요즘 날이 참 좋다. 한낮의 날씨는 다소 덥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1년 중 이토록 화사한 날이 며칠이나 될까 싶다. 이렇게 소중한 날을 사무실에서만 보내기가 아까워 직원들과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가볍게 산책을 하기도 한다. 빌딩 사이로 난 길을 산책로 삼아 걷다 정해진 점심시간이 다해 다시 회사로 발길을 돌릴 때면 뭔가 흉내를 내다 만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빌딩 숲 산책’을 하다 보면 이 길에서 마주친 사람을 다시 저 길에서 볼 때가 많다는 것이다.

알고보면 여의도(서울)에도 공원이 여러 곳 있다. 익히 알려진 ‘여의도공원’이 있고 새로운 벚꽃 명소로 떠오른 ‘여의도샛강생태공원’도 있다. 그리고 필자의 회사 본사와 가까운 지하철 9호선 샛강역 근처에 ‘앙카라공원’이 있다. 한번 들으면 쉬이 그 이름이 잊혀지지 않는 이 공원의 본래 명칭은 ‘자매도시공원’이다. 한국의 수도인 서울시와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시의 자매 결연을 기념해 1977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니 30년을 훌쩍 넘긴 세월을 지나온 공원이다. 터키가 지난 한국전쟁에 1만명이 넘는 자국군을 파병해 우리나라를 도운 우방국임을 생각하면 공원 조성의 의미가 더욱 와닿는다.

공원 가운데엔 터키의 전통 포도주 농가를 본뜬 ‘포도원 주택’이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앙카라시에서 기증한 민속품으로 내부도 장식해 놓았다. 이 주택을 중심으로 화단과 산책로가 꾸며져 있는데, 공원이라기보다는 한 가정집의 바지런한 안주인이 정성스레 가꿔 놓은 정원 같은 느낌이다. 산책로가 길지 않아 휘휘 걷는 맛은 없지만 간단히 먹거리를 사들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점심시간을 보내기엔 참 알맞다. 최근엔 저녁자리 대신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식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보곤 한다. 화창한 날씨와 함께 이렇듯 아늑한 공간이 주어진다면 값비싼 레스토랑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한 직원이 “가끔 부서에서 샌드위치나 피자 등을 주문해 앙카라공원에 나가 점심을 먹는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적당히 그늘진 장소에 자리를 잡은 뒤 1시간가량 먹거리와 함께 이야기하고 나면 오후 업무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복잡한 점심시간,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도, 뒷사람 눈치 볼 필요도 없이 여유롭게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어 좋다고도 했다. 거창할 것 없이 이런 소박한 모임이 직원들 간 진정한 소통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업무 효율이 높아지는 부수효과도 있지 않을까. 필자도 한 달에 두 번 정도 직원들과 모닝커피를 마시거나 일과 후 가벼운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편안히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 이번 달에는 시간을 점심으로 옮겨 앙카라공원으로 나가볼까 한다. 이처럼 좋은 날이 다 지나버리기 전에 말이다.

정문국 < 알리안츠생명 사장 munkuk.cheong@allianzlif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