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은 세계 5위 '가상수' 수입국
오늘은 제20회 세계 물의 날이다.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유엔 환경정상회의에서 물 부족이 지구의 심각한 문제로 제기됨에 따라 제정된 날이다. 유엔이 지구의 물 문제를 제기하자 미국의 국제인구행동연구소는 1993년 국가별 물 여건을 비교해 18개 물 기근 국가, 9개 물 부족 국가, 그리고 나머지를 물 풍요 국가로 분류했다.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군에 속하게 됐다.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라는 사실은 이후 계속 논란이 돼 왔다. 한강을 비롯해 금강, 영산강, 낙동강 등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시작되면서 그 논란은 더욱 심해졌다. 일부 환경단체들과 교수 등 추종 지식인들은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라는 것은 정부가 댐 건설과 4대강 사업을 하기 위해 내세우는 거짓말이라 주장하고 있다.

우리를 물 부족 국가로 분류한 미국의 국제인구행동연구소는 유엔과 무관한 사설 연구소에 불과하며 국민들이 물로 인한 불편함이 없이 사는데 무슨 물 부족이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와 물 전문가들은 국제인구행동연구소가 각국의 물 여건을 충분히 고려한 자료와 기준으로 분류했고, 유엔도 이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민들은 누구 말이 맞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이 논란에 쐐기를 박을 자료 하나가 국제기구에서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7일 ‘OECD 환경전망 2050’을 발간하면서 우리나라를 OECD 국가 중 가장 심각한 물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나라로 분류해 발표했다.

아울러 우리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수자원 관리와 녹색성장에 관한 종합적 접근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4대강 살리기로 328억달러(37조원)의 경제적 편익을 비롯해 34만개의 일자리 창출과 함께, 이 사업의 경험과 기술 개발을 통해 한국이 물 관리 선도국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적고 있다.

4대강 사업 반대 측은 이 발표도 무시할 태세다. 국민이 느끼지 못하는데 왜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가장 심각한 물 스트레스를 받는 국가냐는 것이다. 그럴 듯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식량문제와 가상수(virtual water) 수입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먹는 식량의 4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그 속에는 엄청난 양의 가상수가 포함돼 있다. 가상수란 식량이나 공산품 등을 생산하는 데 사용된 물을 말한다. 예를 들어, 쌀 1㎏을 생산하는 데 1900~5000ℓ, 콩 1㎏은 1100~2000ℓ, 쇠고기 1㎏은 1만5000~7만ℓ의 물이 필요하다.

우리가 수입하는 식품에는 2007년을 기준으로 총 450억(곡물 316억, 축산물 89억 등)의 물이 들어있다. 이는 우리나라 모든 ‘물그릇’(다목적 댐, 생공용수 댐, 하구언 댐, 농업용 저수지)을 합한 용량 130억의 3배가 넘는다. 물론 우리가 생산해서 외국에 수출하는 공산품에도 가상수가 포함돼 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한 순수입만 320억이 넘어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가상수 수입국이다.

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가상수 수입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기후변화로 세계 식량생산은 매년 줄어들고 바이오에너지로 사용되는 곡물량은 급속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평균온도가 섭씨 1도 증가할 때 곡물 생산량은 10% 감소하게 되고, 2025년께는 지금보다 30%나 줄어든다는 것이 식량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반면에 급속히 증가하는 세계 인구로 식량 수요는 2030년까지 50%, 2050년까지 2배가량 늘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가뭄과 홍수의 나라이자 태생적 물그릇 부족국가다. 하지만 관개농업과 고도의 산업화, 그리고 높은 인구밀도 등으로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한다. 심각한 물 부족 국가이지만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버텨왔다. 이제 결론이 자명한 물 부족 논쟁은 여기서 접고 다가올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비해 지혜를 모으자.

박석순 < 국립환경과학원 원장 ssp@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