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이 필요한 인력을 임금 10에 채용하고 있다고 하자.이 기업이 큰 돈을 벌어서 직원들의 급여를 15로 인상한다면 11이나 12라도 받고 일하겠다는 외부 근로자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러나 무한정 채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15보다 적게 주어도 좋다는 외부 근로자의 취업 기회는 봉쇄당한다. 시장 경쟁을 훼손한 노조나 다른 제도적 이유 때문에 기존 직원들만 15를 받고 일할 뿐이다.

근로자로 하여금 자신의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노력하도록 만드는 가장 강력한 유인은 시장 경쟁이다. 나보다 우수한 경쟁자가 나보다 낮은 임금으로도 일하겠다고 나설 때 내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나는 업무 능력 개선에 부단히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더 낮은 임금에라도 일하겠다는 동급 근로자들이 있어도 나의 고임금 일자리가 보장된다면 나는 굳이 내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근로자들이 이렇게 안일하면 노동생산성은 부진할 수밖에 없고 기업은 노동생산성이 높은 근로자들을 찾아서 다른 나라로 옮겨간다. 기업이 옮겨가면 일자리가 줄어들고 전체 근로자들의 형편은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이 큰 돈을 벌었다고 해서 직원들의 임금을 시장 임금보다 더 높게 책정하고 번 돈을 나누어주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나라 취업자의 35%에 이르는 약 560만명의 근로자들이 소위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정규직 근로자들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의료보험 등의 혜택도 없으며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시 재계약된다는 보장도 없다. 같은 근로자이면서도 정규직보다 훨씬 열악한 근로조건을 감수해야 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시름은 현재 한국 노동시장의 가장 우울한 모습이다. 그런데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노동시장의 특이한 진입장벽에서 비롯한다.

근로기준법은 기업이 일반 직원을 함부로 해고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고용 보호를 받는 직원이 정규직이다. 반면에 고용계약에 고용기간을 명시하고 채용된 근로자가 비정규직이다. 기업은 정규직 직원이 시장 임금보다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더라도 이 직원을 해고하고 외부 인력으로 대체할 수 없다. 정규직 임금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고용보호법 조항은 일종의 진입장벽을 형성해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 협상력을 높여준다.

따라서 기업은 기간제 비정규직 고용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비정규직들은 정규직화를 요구한다. 만약 정규직화가 법제화된다면 기다리는 것은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뿐이다. 올바른 해법은 근로기준법의 고용보호 조항을 폐지하는 것이다. 정규직을 비정규직화하면 노동시장의 경쟁이 살아나고 노동생산성도 높아진다. 이에 따라서 국내외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면 임금과 근로조건,그리고 고용 안정성이 함께 개선될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shoonlee@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