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분양원가 공개 확대로 민간아파트 공급이 위축되면 공공주택을 확대해 공백을 메울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후분양제 시행으로 시차(時差)가 생겨 당장 내년부터 수급에 차질이 불가피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특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주택건설 물량은 이미 2004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연간 목표치를 크게 밑돌고 있는 형편이어서 이 같은 수급 불균형은 상승세로 돌아선 집값 불안을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수도권 주택난 심각
수도권 주택난이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듬해인 2004년부터 수도권 주택공급 실적은 매년 목표치의 60~70%에 머무르고 있다.
2004년 정부는 수도권에 30만가구를 짓기로 했지만 실제로는 20만5000가구를 공급해 달성률은 68.3%에 그쳤다.
2005년에도 28만2000가구를 목표로 했지만 실제 공급물량은 19만8000가구로 달성률은 70.2%에 불과했다.
올해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8월 말 현재 수도권 주택건설 실적은 8만6039가구로 올해 연간 공급목표(25만3000가구)의 33.9%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서울지역은 지난달 말까지 2만4558가구가 공급돼 올해 목표치의 22.0%에 불과한 상태다.
최근 집값 불안이 다시 확산되는 것도 이 같은 사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주택공급이 목표치의 5~10%만 못 미쳐도 시장에 바로 영향이 온다"면서 "외환위기 직후인 1998~2000년의 공급 부족이 2002~2003년의 집값 급등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년 수급사정 '최악'
특히 내년 수급 사정은 최악이 될 것이란 예상이다.
당장 주공 아파트는 공정률 40%를 넘긴 뒤 분양하는 후분양제가 의무화된다.
주공 분양주택은 이제까지 통상 착공 3개월 후(공정률 10% 미만)에 공급됐으나,후분양제가 도입되면 공기가 30개월이라고 할 때 대략 착공 13개월 후에나 분양할 수 있게 돼 당초 분양일정이 최소 10개월 정도 늦춰지게 되기 때문이다.
내년도 공급물량 가운데 이미 후분양되고 있는 임대주택을 제외한 2만가구 안팎의 분양주택은 공급시기가 내년 말이나 2008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서울시는 1만5200가구 규모의 은평뉴타운을 포함,앞으로 공정률 80%를 넘어야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방침이어서 SH공사를 통한 공공주택 공급은 자칫 내년에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3~5월께 분양원가 공개범위가 민간택지까지 확대될 경우 상당수 주택업체들은 주택 공급을 아예 포기하거나 분양시기를 대폭 늦출 가능성이 크다.
분양원가 공개범위가 확대될 경우 분양가의 적정성을 검증하는 데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건설사들이 주택공급을 일부러 미루지 않더라도 분양시기가 지금보다 대폭 늦춰지는 것은 불가피해져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주택공급은 사상초유의 공백사태마저 우려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급 불안 해소할 수 있나
정부가 2004년 아파트 원가공개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원가공개보다 원가연동제가 더 낫다고 강조하던 입장을 바꿔 이번에 원가공개 확대에 나섬에 따라 정책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난도 거세다.
당시 정부는 원가공개에 대해 △분양가 인하 효과가 불확실하고 △원가를 검증하기 어려우며 △건설사가 사업량을 축소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었다.
정부가 주택 공급 위축에 대비해 수도권 공공택지를 추가 확보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현실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반응이다.
신도시 등 공공택지 개발 기간이 갈수록 장기화되고 있어 '시차문제'에 따른 주택 수급 공백을 메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0년대만 해도 신도시 등 공공택지는 지구 지정부터 준공까지의 개발 기간이 평균 4~5년 정도였지만 지금은 7~10년이나 걸린다.
또 2001년 말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돼 최근 2차 청약을 마친 판교 아파트의 입주 시기는 2009~2010년이다.
주상복합 아파트와 연립주택 등 3단계 분양 예정 물량까지 감안하면 지구 지정부터 입주 완료까지 10년이 넘게 걸린다는 얘기다.
파주신도시도 2000년에 1단계(운정지구),2003년에 2단계가 각각 지정됐지만 문화재 발굴 등으로 분양이 늦춰져 2012~2013년이나 돼야 사업이 완료될 전망이다.
강황식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