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행복한 삶의 지혜 ..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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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p@eland.co.kr
나는 대학생 때 이름 모를 병에 걸렸다.
언젠가부터 걷기가 힘들고 점퍼가 무거워 입기 어려웠다.
나중에는 연필이 무거워 손바닥을 끌며 글씨를 쓰게 되었고 이불이 무거워 덮기 힘들고 의자에 앉아 있는 것조차 어려웠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알게 된 병명은 근무력증.
치유가 불가능하고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졸업 후 남들처럼 취업하는 대신 종일 누워 지내게 되었는데,이 때 나의 간절한 소원은 오직 하나.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걷고,움직일 수 있는 것,그것 뿐이었다.
내 아내는 결혼한 지 두 해쯤 지난 후 몸의 왼쪽부분에 마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몸 한쪽 전체를 거의 쓸 수 없게 되었다.
밤에 심한 통증에 시달리며 눈물 흘리는 아내의 고통을 덜어 주느라 뜨거운 물에 담근 수건으로 문질러 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유명한 병원은 모두 가보았다.
병명도 알 수 없었던 그 어려웠던 때 내가 아내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던 제목은 단 하나 "제발 목숨만 살려 주세요"였다.
2년 가까운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난 후 나처럼 기적적으로 아내는 건강을 회복했고 이 두 기적은 기도의 응답이었다고 생각하며 감사하게 살고 있다.
우리 회사에는 장애가 있는 직원들이 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한 직원을 볼 때마다 나는 예전의 내 모습을 떠올린다.
이 직원의 가장 큰 소원은 남들처럼 걷는 것일 것이다.
우리 회사에는 장애 자녀를 둔 직원들도 있다.
그들의 소원은 하나일 것이다.
보지 못하는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보게 되는 것이고,심장이 기형인 아이의 부모는 아이의 심장이 정상적으로 뛰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아주 평범한 것-걷는 것,뛰는 것,보는 것…
이런 것들은 어떤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소원이요 기적인 것이다.
아마도 북한 굶주린 동포들의 소원은 대한민국의 시민이 되는 것이기에 목숨을 걸고 남으로 오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내 주변에서 '한국 시민권' 때문에 늘 행복해 하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가지고 있지만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한 소유자가 아니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기적인지 모르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없다고 불평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헤아려 보는 것,내가 늘 당연히 여기고 있는 내 모든 것들에 대하여 그것들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의 눈으로 바라 보는 것,그것이 내가 배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의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