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순 < 현민시스템 대표이사 lhs@hyunmin.co.kr >

며칠전 e메일을 하나 만들면서 비밀번호를 조합하느라 잠시 머리를 짰다.

e메일 아이디와 함께 연상하기 쉬운 걸로 비밀번호를 정하긴 했지만 어째 나 자신이 의심스럽다.

깜박 잊고 쩔쩔매지나 않을지.

그러고 보니 이메일 만들 때 비밀번호를 잊었을 경우에 대비해 또 하나의 항목을 둔 것이 있었다.

"자신의 별명은?"등을 두어 만약의 "망각사태"에 대처하고 있다.

외워야 할 번호가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알아야 하거나 외워야 할 번호들을 쭉 나열해보니,만만치 않다.

집 동 호수에 몇개의 전화번호는 물론이고 가족이나 친구 생일이며,최근에는 비밀번호들이 슬그머니 불어나기 시작했다.

비밀번호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참 많다.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는데,현금인출카드의 비밀번호를 카드 번호의 앞숫자로 했던 터라 통장에 있던 돈이 빠져 나가버린 일도 최근 들었다.

해서 금융기관에서는 주민등록번호,생일 등등 타인이 쉽게 유추할 만한 번호는 비밀번호로 쓰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

법적으로도 노출 우려가 높은 비밀번호는 상대적으로 보호를 덜 받게 마련이고.

휴대폰에도 비밀번호가 도사리고 있다.

잠금 장치나 음성 확인 등에 비밀번호가 필요한데,이 번호 때문에 해프닝이 일어나곤 한다.

우리 세대만 해도 부가기능을 그다지 쓰지 않지만 젊은 층에서는 비밀번호 사건들이 툭툭 터지나 보다.

휴대폰을 비밀번호로 잠갔다가 깜박 잊고 끝내 생각나지 않아 결국 휴대폰을 해지하고 다시 만든 일은 부지기수다.

자신의 휴대폰을 친구가 장난 삼아 비밀번호를 넣고 잠갔다가 잊어버려 다투기도 한단다.

자주 만나는 친구 하나는 고교생 아들한테 동전이나 카드없이 번호(고유번호와 비밀번호)로만 쓰는 전화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어느 날 아들이 병원에 입원한 친구에게 전화 자주 하라고 이 카드의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그런데 아들 친구가 그만 자제력을 잃고 전화를 너무 많이 쓰는 바람에 전화카드를 폐지했단다.

친구는 아들 친구 문제라 화도 못 내고 끙끙 앓았지만 한가지 비밀번호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비밀"로 지켜져야 한다는 쓰라린 경험을 얻었다고 했다.

급기야 인터넷 사이트에 숱한 비밀번호들을 개인별로 관리해주는 사이트가 생겼다지만 이 사이트에도 역시 비밀번호가 필요하다니,이것 참 산 너머 산이다.

어쩔 수 없이 번호들을 껴안고 살아야 할 바에는 번호들을 잘 관리하는 것도,번호에 쫓기지 않고 사는 생활의 지혜일 성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