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에서 15,16일 이틀간 개최된 G-20 재무장관 회담의 중요성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G-20 재무장관 회의체"의 출범이라는 상징성뿐만 아니라 국제금융질서
재편이라는 굵직한 주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점 때문이다.

이번 회담은 세계 경제위기가 절정이던 지난해 하반기에 발의되었던 만큼
외환위기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의제 역시 단기 투기성자금의 이동을 통제하고 효율적인 환율제도를
유지하며 빈곤국을 지원하는 방안을 확보하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회담일정이 구체화되면서 IMF개혁 문제가 주의제에 포함됐고
지난달엔 IMF와 세계은행의 고위인사들이 잇달아 사임을 발표하면서 후임자
문제까지 얽혀들게 된 것이 그간의 경과다.

이번 회담에서는 예상대로 미국이 IMF의 축소 개편방안을 제안하고 일본과
유럽이 이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는등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둘러싸고 선진국들 간에 부분적인 갈등양상도 나타나 주목을 끌었다.

"IMF를 단기유동성 공급기구로 제한하고 세계은행을 중장기 신용 공여기관
으로 확대 개편하자"는 서머스 미국 재무장관의 제안을 다른 참가국 장관들이
미국의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영향력 확대 전략으로 받아들이면서 갈등구조가
표면화된 것이다.

공식 의제는 아니었지만 IMF총재 내정도 뜨거운 이슈였다.

전통적으로 IMF총재는 유럽인이,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인이 맡아왔고
이번에도 독일 재무차관인 코흐 베저가 유력한 IMF총재 후보로 떠올라있다.

그러나 IMF가 축소개편될 것이라면 유럽측의 이유있는 불만이 제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 역시 IMF개편과 맞물려 있는 셈이다.

이번 회의가 더욱 관심을 끈 것은 중국 인도등 21세기의 잠재적인 강대국
들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G-20 재무장관 회담이 G-7 재무장관 회담을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은 성급하다고 보겠지만 중국 등의 G-20 재무장관
회담 데뷔가 앞으로 국제 토론 무대의 분위기를 크게 바꿔갈 것이라는 점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고 하겠다.

우리나라가 국제금융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앞으로의 논의과정에서 어떤
입장을 견지해야 하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아 보인다.

또 서둘러 입장을 정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다만 헤지펀드등 단기 투기자금의 급격한 이동을 경계하면서 사안에 따라
신축적으로 대응하는 전술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더욱이 상황 정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시애틀 WTO각료회담에서와
같은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하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