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중에서도 최고가, 고급품 중에서도 최고급으로 인정받고 있는 에르메스
의 역사는 창업자 티에르 에르메스에서부터 그의 5대손 장 루이 뒤마
에르메스까지 화려하게 이어진다.

티에르 에르메스는 1801년 독일 크레펠드에서 태어났다.

당시 신교도였던 그의 가정은 프랑스 파리로 종교적인 망명을 결심했고
1837년 파리의 유명한 마드레인 광장의 바스 듀 름파르(Rue Basse-du-Remp
art)로에서 마구상을 시작했다.

에르메스의 심볼인 큰 원형안의 사륜마차와 마부는 2백년전에 태어난 이
브랜드의 기원을 말해주는 것이다.

티에르는 당시 교통수단인 마차를 끄는 말에 필요한 용구, 안장, 장식품을
직접 손으로 만들어 냈다.

1867년 세계 박람회에서 1등 메달을 받아 에르메스 마구 제품의 섬세함과
튼튼함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에르메스는 1880년경 부자 고객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포부르 쌩또노레(Faubourg Saint-Honore)에 매장을 열었다.

티에르의 아들인 샤를 에밀 에르메스는 선친의 일을 계승, 도시 발전에 따른
새로운 사업을 창출해 냈다.

에르메스가 부티크 사업으로 확장하게 된 것이 바로 이때다.

샤를 에밀과 그의 아들은 1892년 켈리 가방의 원형인 오뜨 아 크루아(Haute
a Courroies) 가죽끈 가방을 고객들에게 선보였다.

또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폴란드 및 러시아 등지로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1900년에서 1차 세계대전까지 에르메스의 마차사업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다.

루마니아와 스페인의 국왕들, 일본 러시아 요르단의 황제, 프랑스 페루
필리핀의 대통령, 재계와 정계의 유명인사 등 전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고객들을 갖게 되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에르메스는 파리에 있는 영국의 대규모 마구상들을 흡수할
정도로 사업이 번창했다.

그러나 자동차의 출현과 함께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해 감을 깨달은 에밀-
모리스는 현대적 여행 스타일에 걸맞는 소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1922년 벨트 장갑 보석 손목시계 여행도구세트 스포츠 및 자동차
소품 등의 기존 제품군에 새들 스티칭(말안장을 만들때 쓰는 독특한
박음질법)을 적용한 고급 가죽 소품들을 포함시켰다.

또 당시 유럽에는 소개되지 않았던 지퍼를 처음으로 사용, 고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대공황 시기에는 켈리라고 이름 붙여진 핸드백과 아젠다(수첩), 싹 아
데페쉐(기자들을 위한 가방) 등 에르메스의 신화적 제품이 출시 되었다.

1978년 그룹의 회장으로 선출돼 지금까지 그 신화를 지켜오고 있는 쟝
루이 뒤마는 시계 및 식탁 장식용품 등 새로운 라인을 도입했다.

또 아시아와 호주까지 시장을 확대했다.

에르메스사는 현재 전세계에 2백50여개 부티크를 운영중이며 약 4천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연간 매출이 50억프랑스 프랑에 달하는 국제적 그룹으로 성장했지만 말과
마구로 상징되는 인간생활에 대한 깊은 관심은 에르메스의 정신으로 지켜지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