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협을 최후방어선으로 삼아 한국의 파상공세를 저지하려는 일본.
세계 반도체 시장을 둘러싼 한일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세계 1위를 놓치지않으려는 양국의 샅바싸움은 "반도체 대전"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만큼 여러분야에서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한일 반도체 대전이 얼마나 치열한지는 양국의 대표적 메모리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와 NEC간 1위 경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삼성과 NEC는 지난해 세계시장에서 점유율 1위와 2위를 기록한 업체다.
삼성은 14.8%, NEC는 11.1%를 차지했다.
두 회사간 경쟁은 단순히 점유율 싸움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술경쟁도 그에 못지않게 치열하다.
대표적인게 16메가D램의 양산경쟁이다.
삼성은 작년말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16메가D램을 주력생산품으로 전환했다.
4메가D램의 생산량을 연산 800만개 이하로 줄이고 대신 16메가D램을
그 이상 생산하기 시작한 것.
NEC는 한술 더 떴다.
16메가D램 생산량을 월 2,000만개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것.
삼성이 주력생산품을 4메가에서 16메가로 세대교체하면서 주도권을
잡아가자 "물량공세"로 즉각 응수하고 나선 것이다.
삼성과 NEC 뿐만이 아니다.
양국의 전업계가 샅바싸움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에 벌어졌던 양국 업체의 대미투자경쟁이 좋은 예다.
현대전자와 삼성전자가 작년초 미국에 반도체 일관생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하자 일본 업체들도 이에 뒤질세라 곧 바로 대대적인 미국진출 계획을
발표했다.
후지쓰 도시바 NEC 히타치등 거의 모든 일본기업들이 포함됐다.
특히 도시바는 "반도체에 관한 한 해외생산 기지는 세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면서 미국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업체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한국업체들의 의욕적인 해외진출에 자극받아
나온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기술개발 부문에서도 양국 기업은 한치의 양보가 없다.
삼성이 지난 94년 256메가D램을 세계 처음으로 개발한데 이어 현대가
지난해 차세대 방식인 싱크로너스 타입의 256메가D램을 역시 세계최초로
내놓자 일본업체들은 공동전선을 구축했다.
일본 반도체 10개사가 공동출자해 연구개발 전문회사를 세운 것.
기가급 반도체및 생산공정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결국 256메가D램에서는 한국에 졌지만 기가급에서는 결코 선두자리를
내줄 수 없다는 뜻이다.
반도체 경기가 그동안의 초호황에서 안정적 성장단계로 접어든 올들어서는
고속 메모리 생산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EDO 싱크로너스 플래시 등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생산 체제 구축에 양국
기업이 열을 올리고 있는 것.
한마디로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양국이 "장군" "멍군"을 주고 받고
있다고나 할까.
물론 양국 업체들이 경쟁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삼성과 NEC가 유럽에서 공동생산체제를 구축하고 LG와 히타치, 현대와
후지쓰가 기술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발전을 견인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같은 협력은 극히 제한된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두 나라기업 모두 세계최고의 자리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이 세계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일본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하고, 일본의 입장에서도 한국을 이기지 못하면 기가급 시대에도
2위로 뒤쳐질게 분명하다.
한일 양국 기업의 자존심 대결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두고 볼 일이다.
< 조주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