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500조 시대국내 퇴직연금 시장이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질적으로 보완할 부분이 한둘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대부분의 적립액이 저수익 상품에 방치돼 수익률이 은행 예금보다 낮은 퇴직연금의 고질적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퇴직연금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도입한 디폴트옵션(사전지정 운용)마저 운용자금의 80% 이상이 예금 등으로 이뤄진 초저위험 상품에 집중돼 있다. 금융권에선 디폴트옵션 제도를 전면 개선하고 운용사업자에 투자를 맡기는 일임형 서비스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3·끝) 퇴직연금 디폴트옵션마저 초저위험 '쏠림'
53조 중 45조 예금 등에 투자
중·고위험 투자 땐 10% 웃돌아
디폴트옵션 예금비중 제한 필요
정부, 저성과 상품들 퇴출 검토
업계선 "일임형 서비스 확대를"
◇‘초저위험’에 85% 집중
저수익 상품에 퇴직연금이 몰리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23년 도입한 디폴트옵션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적립액 53조3318억원 가운데 45조5282억원(85.4%)이 ‘초저위험 등급’ 자산으로 운용됐다. 초저위험의 1년 수익률은 평균 2.57%에 불과했다. 같은 시기 은행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2.86%)보다 낮았다. 고위험(14.93%) 또는 중위험(10.8%)을 선택했으면 10% 이상의 수익률을 거둘 수 있었지만 저위험 자산에 방치해 은행 예금보다 못한 수익률을 기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디폴트옵션의 자산 구성에서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중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해 퇴직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폴트옵션이 있는 주요국 가운데 가입자의 선택지에 원리금보장형이 있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시중은행 퇴직연금 담당 임원은 “초저위험 자산에 자금이 몰려 있는 정도가 지나치다”며 “보수적 투자자라도 예금 이자를 뛰어넘는 수익률을 내도록 상품을 설계하고, 이 같은 상품을 선택할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퇴직연금 운용사업자가 알아서 자산 배분과 매매를 하는 일임형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퇴직연금 가입자는 대부분이 직장인으로 자산을 직접 운용할 시간이 부족해서다. 현재는 개인형퇴직연금(IRP)의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에 한해서만 일임형 운용을 허용하고 있다. 혁신금융서비스기 때문에 일단 기본 사업 기간은 2년이며, 추가로 2년 더 연장해야 하는 한시적 사업이다.
◇제도 손보는 정부
정부도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퇴직연금 제도를 손질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일단 디폴트옵션 종합평가에 나선다. 판매 승인을 받은 지 3년이 지난 상품의 안정성과 수익률을 면밀히 살필 방침이다. 성과가 미진한 상품에는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융권에선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품이 퇴출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연금 선진국으로 꼽히는 호주와 영국은 오래전부터 퇴직연금 사업자의 수익률 등을 종합 평가해 성과가 미진한 곳을 가려냈다. 이런 경쟁 체계가 퇴직연금 운용 능력을 키우는 원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정부는 전문기관이 퇴직금 관리와 운용을 전담하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오는 7월 구체적인 개편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올해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켜 내년 말 첫 기금형 수탁법인을 가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다수 사업장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연합형, 금융회사가 관리하는 개방형, 공공기관이 전담하는 공공기관형 등 여러 유형으로 운용할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은행, 증권사 등으로 이뤄진 시장에서 공공기관의 역할이 어느 정도로 커질지 주목된다”며 “증시 호황으로 퇴직연금 운용에 관심이 높아졌을 때 가입자의 수익률을 끌어올릴 체계를 확실히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성/곽용희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