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지각변동'신한금융그룹과 하나금융그룹은 후발 은행으로 시작해 고속 성장해온 금융그룹이다. 격전지에서 번번이 부닥쳤고 빠르게 덩치를 키우기 위해 인수합병(M&A)전에서 혈투를 벌였다. 그러다보니 고위 임원이 상대 회사로 이동하는 일은 드물었다.
(上) 금융사 수장들, 경쟁사 사외이사로 잇단 컴백
'38년 신한맨' 임영진, 하나카드로
SC제일 이끈 박종복은 신한지주
라이벌보다 노하우 수혈에 방점
다양성 강조한 정부 요구에 부합
AI·디지털 전환·소비자 보호 등
복합과제 머리 맞댈 인사도 필요
◇ 과거 적장을 사외이사로 영입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회사 임원급 출신이 경쟁업체 이사회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KB국민카드 대표를 지낸 이동철 전 KB금융지주 부회장은 오는 26일 열리는 JB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는 사외이사 후보로 올라 있다. 이 전 부회장은 은행, 보험, 캐피털에서도 경험을 쌓았다.은행권에선 신한은행 출신인 배진수 전 신한AI 대표가 iM뱅크 사외이사 후보 명단에 포함됐다. 지난해 말엔 토스뱅크가 권선주 전 기업은행장을 선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증권업계에선 전병조 전 KB증권 사장(하나증권·재선임), 정유신 전 스탠다드차타드증권 한국대표(우리투자증권·신규 선임) 등이 경쟁사 이사회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 기업인 출신 사외이사 증가
동종업계 출신 사외이사가 늘면서 국내 7개 금융그룹 사외이사 중 기업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31.6%에서 올해 41.5%로 높아진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데는 정책 요인이 한몫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국내 금융지주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면서 이사회를 다양한 전문가로 채울 것을 주문하고 있다.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월 기자간담회에서 이사회 내 교수 비중을 축소하고 정보기술(IT) 보안과 소비자보호 전문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JP모간 등 미국계 투자은행은 경쟁사 출신이 이사회 멤버로 참여한다”고 언급했다.
비단 정부 요구 때문만은 아니다. 금융회사들은 규제 대응과 인공지능(AI)·디지털 전환, 소비자 보호, 신사업 확대 등 복합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만큼 산업 현장을 잘 아는 경영인을 이사회 구성원으로 영입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사업 구조가 비슷한 경쟁사를 이끌어본 전직 CEO나 임원은 현장 감각과 전략 경험을 함께 갖춘 인물이라는 점에서 금융회사에도 매력적인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업이 제조업에 비해 경쟁사 이동에 덜 민감한 점도 이런 변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국내 금융회사들은 경쟁사와 사업 구조가 비슷하고 기술력보다는 시장 상황과 영업 전략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금융업계에선 특정 인물이 경쟁사로 자리를 옮긴다고 해서 곧바로 핵심 기밀 유출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다”며 “경쟁사 CEO 출신이라도 전문성과 경험을 기준으로 사외이사 영입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성/조미현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