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이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번째 달도 훌쩍 지나가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새해 계획을 세운 후에 그 결심이 2~3주 내에 무너진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1월 두 번째 금요일 (Quitter’s Friday)이 유명하다.
지금은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천만 명이 달리기를 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러닝이 열풍이다. 관련 TV 예능프로그램도 생기고, 풀 마라톤인 42.195km를 달리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 아마추어들의 기록도 점점 좋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시대적 트렌드와 잘 맞는 것도 있을 것이다.
<상실의 시대>, <1Q84> 등을 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2007년 자신의 달리기와 달리면서 했던 여러 가지 생각들을 정리해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짧은 에세이를 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근 25년 만이었다.
“… 이제부터의 긴 인생을 소설가로 살아갈 작정이라, 체력을 지키면서 체중을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본격적으로 매일 달리게 된 것은 <양을 쫓는 모험>을 쓰고 난 얼마 후부터였다고 생각한다. 전업 소설가로서 살아가자고 결심한 전후의 시기일지도 모른다.”
기록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나의 달리기 역사도 꽤나 오래되었다. 2011년, 독일 베를린에서 유학을 했을 때 기숙사가 마침 베를린의 가장 큰 공원인 티어가르텐(Tier Garten) 옆에 있어서 일주일에 2~3번씩 뛰었었다. 길게는 뛰지 못하고 보통 3~4km 정도를 쉬지 않고 뛰었는데, 땀 흘리고 와서 샤워를 하고 샐러드와 같은 가벼운 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면 괜히 잘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왜 사람들은 스스로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가
나처럼 짧게 뛰는 사람들은 차치하고서라도 도대체 사람들은 왜 풀 마라톤이니 철인 삼종 경기 같은 힘든 스포츠에 스스로를 몰아넣을까. 인고의 시간을 거친 후에 얻을 수 있는 자기 만족감 혹은 효능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래도 가장 빠른 만족과 행복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는 게 아닌가 말이다. 하루키는 그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고통을 통과해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에서 자신이 살고 있다는 확실한 실감을, 적어도 그 한쪽 끝을, 우리는 그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의 성질은 성적이나 숫자나 순위라고 하는 고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 속에 유동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인식에(잘 된다고 하는 가정이지만) 다다를 수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문학사상) / 출처. 예스24
하루키는 달리기를 시작한 1982년 이후로 이 일에 글쓰기만큼이나 집착적으로 몰두한다.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서 전문팀과 훈련을 하고, 매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대회에 참가한다. 그리고 마침내, 2005년 마라톤이 시작된 그리스 아테네에서 처음으로 42km를 달렸다. 이후 계속해서 국제 대회에 참가하던 그는 철인 삼종 경기로 그 종목을 옮겨서 운동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베를린에서 내가 깨달은 것
하루키는 달리기에 대해서 ‘별다른 의미도 없는 더없이 무익한 것으로서, 또는 매우 효율이 좋지 않을 것으로서 비친다고 해도,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무용과 무익의 극치인 행위,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을 수도 있는 그런 행위를 두고 ‘어쩔 수 없다’라니. 하지만 그 이후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 무용한 행위에서 오는 깊은 깨달음을 볼 수 있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마시는 것이 ‘멍하게’ 사는 일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땀을 흘리면서 티어가르텐을 뛰던 나의 ‘생동감’에는 비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극명하게 다가왔다. 하루키가 말했던 달리기의 본질, 그리고 사는 것의 메타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같은 10년이라고 해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 쪽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고, 달리는 것은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