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집권 2년… '어공' 對 '늘공' 전쟁 시작됐다

규제개혁 놓고 갈등
소득주도성장 주도한 '어공' 장하성 靑 정책실장
대통령이 처음 힘 실어줘
고용 악화 등 민생 망가지며 '늘공' 김동연 입지 넓어져

靑비서관 42명중 '어공' 33명
정치권·시민단체 출신 대부분
"관료들 반발로 개혁 후퇴"

노무현 정부 때와 판박이
운동권 출신 靑 386그룹
이헌재 부총리와 사사건건 충돌
이 부총리, 결국 1년 만에 물러나

경제지표 나빠질수록 ‘늘공’ ‘어공’ 갈등 격화될 듯
문재인 대통령이 규제 완화 등 혁신성장을 부쩍 강조하면서 정부 핵심 지지층인 시민단체와 노동계 불만이 커지고 있다. “개혁이 후퇴하고 있다”는 게 이른바 ‘좌파진영’의 주장이다. 이들을 대표해 청와대에 들어간 ‘어공’들은 문 대통령 ‘변심’의 원인이 ‘늘공’에 있다고 보고 있다. ‘어쩌다 공무원’의 준말인 어공은 당과 대선캠프에 몸담았던 사람을, ‘늘 공무원’의 준말인 늘공은 정부 부처에서 파견 나온 직업공무원을 뜻한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어공들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혁신성장에 밀리는 듯한 모습이 나타나고, 문 대통령이 잇따라 친기업적인 행보를 보이는 게 관료들의 논리에 포획된 데 따른 것이란 시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비서실은 어공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1급 비서관 42명 가운데 늘공은 9명에 불과하며 나머지 33명은 모두 어공이다. 늘공과 어공 비중이 절반이던 역대 정부와 사뭇 다르다.‘장앤김→김앤장으로’

요즘 관가에서는 ‘장앤김’, ‘김앤장’이란 말이 돌고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이를 빗댄 표현이다.

어공과 늘공의 힘겨루기는 장 실장과 김 부총리 간의 갈등이 단초가 됐다. 각각 어공과 늘공을 대표하는 두 사람은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등을 놓고 몇 차례 부딪쳤다. 올 1분기 분배지표가 악화된 것을 놓고 문 대통령 주재 경제팀 회의가 열렸을 때 김 부총리와 장 실장 등은 원인을 놓고 2시간30분간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여기선 문 대통령이 “소득주도 성장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면서 장 실장의 손을 들어주는 듯했다.하지만 이후 일자리는 물론 투자 지표가 역대 최악의 수준으로 나빠진 수치가 나오면서 장 실장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급기야 지난 6월 홍장표 전 경제수석과 반장식 전 일자리수석을 교체했다. 두 사람은 장 실장과 함께 소득주도 성장을 지휘해왔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장 실장의 손발이 잘렸다”는 표현을 썼다.

문 대통령이 혁신성장을 부쩍 강조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와 맞물린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의료기기 인허가 규제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선언했고, 지난 7일에는 은산분리 완화를 국회에 요청했다. 모두 핵심 지지층인 시민단체가 줄기차게 반대하던 것들이다. 청와대 어공들 사이에서는 “결국 늘공 논리대로 가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권력 순서가 ‘장앤김’에서 ‘김앤장’으로 바뀌었다”는 말도 돌았다.

노무현 정부 2년차 갈등 재연되나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지난 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이 같은 어공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해석이다. 참여연대 발기인 출신인 박 전 의원은 청와대와 정부 내 갈등설을 언급하며 “갈등 당사자가 (관료들을 겨냥해) ‘대통령 말도 안 듣는다’ ‘자료도 안 내놓는다’ ‘조직적 저항에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관가에선 “‘당사자’가 장 실장일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청와대는 이를 부인했다.

박 전 의원은 이어 “국회의원은 (권력을 누리는 기간이) 짧으면 4년, 길면 12년 정도다. 진짜 권력집단은 관료다. (관료 집단은) 정권이 힘이 있을 때는 수그리지만 조그마한 균열이 일어나는 순간 실무와 경험이라는 것을 앞세우고 온갖 논리와 수치를 내세우거나 심지어 조작해 그 틈을 파고든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 집권 2년차에 시작된 어공과 늘공의 갈등은 노무현 정부 때와 판박이다. 노무현 정부 2년차에도 ‘386(1980년대 대학을 다닌 운동권 출신)’ 실세들과 관료 간의 충돌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린 것을 계기로 정책 결정 과정에서 관료들의 입김이 세졌고, 그 중심에 이헌재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있었다.이 부총리는 여당 소장파 의원들이 아파트 원가 공개를 추진하자 “386세대가 경제하는 법을 모른다”고 비판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386그룹은 이 부총리가 야인 시절 받았던 은행 자문료 문제를 언론에 흘리며 도덕성 시비를 걸었다. 참다못한 이 부총리는 “그런 식으로 뒷다리를 잡아가지고 시장경제가 되겠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386그룹과 사사건건 충돌하던 이 부총리는 취임 1년 만에 옷을 벗었다.

어공과 늘공, 최후의 승자는?

현 정부에서 어공과 늘공의 싸움은 시간이 갈수록 늘공에 유리하게 진행될 것이란 시각도 일부 있다. 미·중 무역갈등 등 대외적인 악재까지 맞물려 경제지표는 나빠질 가능성이 높고, 그럴수록 궁지에 몰린 정부가 전문 관료에 의지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도 초기엔 관료들을 멀리했다가 중반 이후 중용하곤 했다.정치권 한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한 386들 상당수가 지금 청와대 비서관으로 포진해 있는데, 이들은 과거 노무현 정부 개혁이 관료들 때문에 실패했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며 “관료들의 입김이 세질수록 이들의 반발과 저항도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훈/조미현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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