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프랑스가 어떻기에
프랑스인의 기질을 얘기할 때 흔히 드는 것이 수많은 치즈 종류다.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는 샤를 드골 전 대통령도 “치즈 종류가 246가지나 되는 나라는 통치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만큼 국민들의 개성이 강하고 취향이 까다로운 데다 지역색까지 유별나기 때문이다. 지금은 치즈 종류가 400가지도 넘으니 더 복잡해졌다.

프랑스인의 또 다른 특질은 자유·평등·박애의 혁명정신이다. 이는 1789년 대혁명을 비롯해 크고 작은 혁명 과정에서 흘린 피의 대가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과 혁명의 심리학》을 쓴 귀스타브 르 봉은 “자유와 박애의 진정한 의미는 점점 퇴색하고 획일적인 평등의 유산만 비대해졌다”고 지적했다.

정치학자들은 ‘구(舊)체제 청산’을 뜻하는 프랑스어 ‘데가지즘(dgagisme)’을 프랑스의 특징으로 꼽기도 한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프랑스 국민은 이 구호를 외치며 39세의 에마뉘엘 마크롱에게 표를 몰아줬다. 지난 10년간 기득권 세력의 무능으로 경제가 바닥을 헤맨 것에 대한 ‘혁명’이었다. 사회당 정부가 ‘일자리 나누기와 근로시간 단축’으로 고용을 악화시킨 결과 국가 순공공채무(2016년 말)가 GDP의 88%까지 치솟았으니 그럴 만했다.

이웃 독일은 비슷한 시기에 고용유연성을 높이는 등의 노동개혁으로 청년실업률을 낮추고 국가채무 비율을 프랑스의 절반으로 줄였다. 정반대 정책으로 경제를 살린 독일을 보고서도 프랑스는 거꾸로 갔다. 정치판은 기득권 세력과 야합했고 국민은 달콤한 포퓰리즘에 젖어 기둥뿌리 썩는 줄 몰랐다.

대통령에 당선된 마크롱은 공약대로 공공부문 일자리를 12만 개 없애는 대신 민간 일자리를 늘리고, 법인세를 33.3%에서 25%로 낮추는 등 경제 살리기에 나섰다. ‘철밥통’으로 불리던 공공노조 개혁에도 착수했다. 그러나 노조의 저항은 수그러들지 않고, 주 35시간인 근로시간을 연장하는 방안도 국민 54%의 반대에 직면했다.

지난 주말 마크롱 대통령이 “근로소득세를 대폭 내리는 대신 근로시간을 늘려 ‘일하는 프랑스’가 되자”고 호소했지만 ‘노란조끼’의 시위는 멈추지 않고 있다. 부자감세를 줄이고 엘리트 관료 양성제도까지 개혁하겠다고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획일적인 평등 의식과 ‘낭만적인 정책’의 중독성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프랑스 정치·경제의 진통을 보면서 우리 현실을 되돌아본다. 한국의 김치 종류도 200가지가 넘는데, 지금 우리에게는 진정 ‘일하는 한국’을 이끄는 정책이 몇 가지나 될까.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