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제가 3% 넘게 성장한다고요? 장사는 코로나19 때보다 더 안되는데요.”

8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꽃가게. 동네 소상공인이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로 “오늘도 손님이 한 명밖에 안 왔다”거나 “장사가 너무 안돼 아르바이트를 내보냈다”는 등의 하소연이었다. 매 분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수출 증가율은 이곳에선 초현실적인 얘기처럼 들렸다.

거시경제 지표와 체감 경기의 괴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반도체 수출 호황으로 올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4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지만, 고용과 소비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지난 3분기 국내총소득(GDI) 증가율(18.8%)과 민간소비 증가율(1.1%) 간 격차는 17.7%포인트를 기록했다. 종전 최대인 2분기의 13.3%포인트를 한 분기 만에 넘어섰다. 3위는 1976년 2분기의 11.8%포인트다. 국가 전체의 실질 구매력이 역대급으로 늘었지만 정작 가계는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반도체 호황에도 내수가 부진한 건 고용시장이 얼어붙은 결과다. 올해 1~9월 15세 이상 월평균 취업자는 전년 동기 대비 11만7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20년 이후 6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이다. 청년 고용률은 9월까지 29개월 연속 하락세를 나타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가 오르면서 지난 2분기 월평균 실질임금은 전년 동기 대비 0.8% 감소했다. 고물가·고금리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에 소비는 더 위축되고 있다. 자영업자의 시름이 갈수록 깊어지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최근 거시경제 지표를 반도체 초호황이 다른 부문의 부진을 감추는 ‘평균의 함정’이라고 설명한다. 최상엽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올해 GDI 증가는 생산량 증가가 아니라 반도체 수출 가격 상승이 주도하고 있다”며 “일반 직장인과 자영업자가 호황을 체감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자본집약적 산업인 반도체의 고용유발계수는 최종 수요 10억원당 2.9명으로 전 산업 평균(7.8명)에 크게 못 미친다.

심성미/김일규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