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자 책임은 쏙 뺀 불공평 법안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는 ‘베어허그(bear hug) 전략’이라는 것이 있다. 인수자가 인수 대상 회사에 거절하기 어려울 만큼 매력적인 인수 조건을 제시해 대상 기업이 항복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전략을 말한다. 지난 9월 ‘한국형 베어허그 제도’ 도입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당정은 연내 입법을 완료할 예정이다.
입법 취지는 M&A 시장 투명성을 높이고 일반 주주의 알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데 있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은 매력적인 M&A 제안(베어허그)이 들어와도 대주주나 경영진이 경영권 방어, 상속세 절세 등을 이유로 묵살 또는 은폐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게 주된 배경이다. 현행 자본시장법하에서는 “공개매수신고서가 제출된 주식 등의 발행인은 …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고만 돼 있다. 아무리 좋은 인수 조건이라도 회사가 의견 표명조차 하지 않고 무시해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개정안에 따르면 이사회는 주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수 제안을 받으면 접수 내용과 검토 계획을 즉시 공시해야 한다. 이사회의 독립적·전문적 판단 결과는 논의 경과 및 사유와 함께 주주에게 알려야 한다. 이 같은 의무를 위반해 ‘공개매수에 관한 의견 표명을 하지 아니한 자’는 1억원 이하 과태료에 처해진다.
문제는 이 법안이 인수 의사의 진정성이 불분명한 ‘떠보기 제안’만으로도 이사회가 공시·설명 의무를 부담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상법상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와 연계된다. 인수를 거절하면 이사는 주주가치 제고에 매우 유리한 인수 제안을 굳이 거절할 수밖에 없는 근거와 자체 기업가치를 증명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거절 후 때마침 주가가 하락했다면? 주가 하락이 이사들이 인수 제안을 거부한 탓이라는 주주들의 거친 비난, 지배주주에 대한 모욕, 나아가 이사가 손해배상소송의 피고가 되는 등의 사례가 나올 수 있다. 반면 인수자에게는 ‘인수 의사 투척’ 외에는 법률상 아무런 의무나 벌칙도 없는 지독한 불균형을 이룬다.
이런 법률이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먼저 ‘진정한 인수 제안’이 증명돼야 한다. ‘진정한’의 의미 역시 모호하다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구체적인 자금 조달 증빙, 주당 가격, 대금 지급 방식, 실사 일정,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규제 승인 계획 등이 포함된 정식 제안서 제출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영국은 인수 후보로 공개된 자는 28일 안에 확정 제안을 내거나 인수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밝히도록 하고 있다.
단순히 인수 제안이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주가는 크게 움직인다. 인수 제안에 따른 정보 유출과 내부자 거래, 통정·가장매매 우려 또한 적지 않다. 이들은 물론 자본시장법상 불공정거래로 처벌된다. 그러나 허위 인수 제안, 사기적 부정거래, 주가 상승 후 인수 제안 철회 등에 대해 일반투자자 구제 방안도 별도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베어허그 제도를 굳이 법률로 규정해야 할지도 의문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3년 도입한 ‘기업매수행동지침’만을 두고 있다. 공격자에게 신무기까지 만들어 주면서 기업엔 일방적인 부담만 강요하는 류의 ‘강제 밸류업’ 행진이 언제쯤 멈출 것인가. 기업인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