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 중인 파스칼 도너휴 세계은행 사무총장 / 사진=세계은행
한국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 중인 파스칼 도너휴 세계은행 사무총장 / 사진=세계은행
“국가 부채를 지속 가능하게 관리하는 가장 강력한 해법은 일자리를 늘려 경제 성장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파스칼 도너휴 세계은행(WB) 사무총장 겸 최고지식책임자(CKO·사진)는 최근 서울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자리가 늘어나면 성장이 뒷받침되고, 성장이 커지면 부채의 지속가능성도 높아진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일랜드 재무장관과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의장을 지낸 도너휴 총장은 세계은행 내 서열 2위 인사로 꼽힌다. 세계은행과 재정경제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동 주관한 ‘글로벌 AI·디지털 서밋’ 참석차 지난 21일 방한했다.

도너휴 총장은 한국처럼 반도체 호황 등으로 초과세수를 거둔 국가가 부채 상환과 미래 투자 중 무엇에 주력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 확보’를 꼽았다. 그는 “시간이 지나도 부채 수준을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려면 성장이 필수적”이라며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은 과거 수백 년 걸렸을 경제 발전을 수십 년 안에 달성하도록 압축해 국가 부채 관리에도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AI가 국가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 재원을 투입할 때 ‘AI·디지털 개발’과 ‘전통적 기반시설(인프라) 투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눠선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도너휴 총장은 “디지털 인프라와 다른 인프라 사이에 더 이상 명확한 경계선은 없다”며 “한 나라의 디지털 역량을 키우려면 광대역 통신망과 데이터센터를 뒷받침할 전력(에너지)과 수자원 인프라 역량도 함께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디지털 경제의 주된 자금 공급원은 민간 자본이지만, 정책 안정성을 제공하고 외곽 지역까지 통신망을 연결하는 ‘라스트 마일’ 사업 등에서 민간 투자를 끌어내는 공공 자본의 마중물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AI 확산에 따른 고용 충격을 두고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처지가 다르다고 진단했다. 향후 몇 년 내 전 세계 노동시장에 청년 12억명이 진입하지만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3억~4억개에 그칠 것으로 추산되는 만큼 각국 여건에 맞춘 일자리 창출 전략이 시급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도너휴 총장은 “선진국과 중진국에는 노동시장 변화 속에서도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첨단 제조업, 보건의료, 관광, 농식품 산업 등을 육성하라고 조언한다”며 “반면 전문 인력과 지식이 부족한 개도국에서는 실생활에 밀착한 ‘스몰 AI’가 오히려 고용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농업 분야를 대표 사례로 들었다. 그는 “전 세계 농가를 일일이 찾아다닐 토양 과학자는 부족하지만, 농민이 인터넷 연결이 열악한 곳에서도 스마트폰 AI로 토양 질을 진단받고 영농 조언을 얻으면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AI를 통해 생산성이 오르면 소득과 구매력이 늘어나고, 결국 해당 산업과 지역사회 내에서 추가 일자리가 만들어져 청년들이 모국을 떠나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설명했다.

세계은행은 이번 서울 서밋을 계기로 2030년까지 전 세계 10억명에게 추가로 인터넷과 AI 혜택을 보급하는 새 디지털 전략을 출범시켰다. 도너휴 총장은 이를 가로막는 3대 장벽으로 ‘전력 부족’, ‘기기 가격 부담’, ‘교육·숙련도 부족’을 꼽으며 한국 기업과의 협력 의지를 내비쳤다.

방한 기간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소설인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를 읽었다는 그는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세계은행 수원국에서 핵심 공여국이자 디지털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의 회복탄력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보급형 기기 확산 등 한국의 기술력과 발전 경험을 개도국과 공유하는 데 한국 기업·정부와 긴밀히 협력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