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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억 시계 "잠깐 차볼게요" 하더니…또 당한 '시계 성지' [도쿄나우]
'시계 성지' 나카노브로드웨이 절도 잇따라
관광객 몰려 혼란, 시착한 채 도주
관광객 몰려 혼란, 시착한 채 도주
30일 일본 경시청에 따르면 전날 오후 7시 55분께 도쿄도 나카노구의 상업시설 나카노 브로드웨이 3층 시계 매장에서 남성 한 명이 고급 손목시계 한 개를 훔쳐 달아났다. 경시청은 절도 사건으로 보고 남성의 행방을 쫓고 있다.
남성은 손님을 가장해 영업 중인 매장에 혼자 들어와 시계 착용을 요청했다. 매장에 약 8~10분간 머문 뒤 시계를 왼팔에 찬 상태로 뛰어서 달아났다. 재킷과 바지, 모자, 운동화는 모두 검은색 계열이었다. 당시 매장에는 점원 두 명이 있었으나 다친 사람은 없었다.
나카노 브로드웨이에서는 지난 8월에도 다른 시계 매장에서 고급 손목시계 네 개가 도난당했다. 판매가격으로 총 약 17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이 사건으로 칠레 국적의 20대와 30대 남성 두 명이 절도 혐의로 체포된 뒤 기소됐다.
경시청 등은 당시 사건을 계기로 9월 중순 주변 시계·귀금속 매장을 대상으로 방범교육을 실시했다. 경찰은 방문객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고가 상품은 실물 대신 모조품이나 사진을 진열하도록 당부했다. 창문이나 진열장에 붙여 쉽게 깨지지 않도록 하는 방범 필름의 활용 사례도 소개했다.
교육에 참가한 시계 매장 점장은 “범인들이 ‘번거로운 가게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손님처럼 시착을 요청한 뒤 달아나는 수법으로 또다시 피해가 발생했다.
나카노 브로드웨이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상품을 취급하는 매장이 모여 있어 ‘서브컬처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시계 매장이 20곳 이상 들어선 고급 시계 거래 중심지이기도 하다.
최근 기자가 찾은 나카노 브로드웨이는 평일 오후와 주말 모두 외국인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엔저에 따른 가격 매력에 일본 중고품 전문점의 검수와 정품 여부에 대한 신뢰가 더해지면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파텍필립, 오데마피게, 롤렉스, 까르띠에 등 백화점에서도 쉽게 볼수 없는 고급 시계들의 실물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며 손쉽게 시착도 가능한 구조다.
많은 방문객이 몰리는 매장 환경은 직원들의 고객 응대와 보안 관리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현장에서도 직원들이 개별 고객의 행동을 세심하게 살피기 어려워 보였다. 고가 시계를 직접 꺼내 보여주고 시착까지 도와야 하는 판매 방식에 혼잡한 환경이 겹치는 구조다.
고가 상품이 한곳에 집중돼 있고, 시계 한 개만으로도 수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훔칠 수 있다는 점이 범행 표적이 되는 배경으로 풀이된다. 고객이 착용감과 제품 상태를 확인하려면 점원이 실물을 건네야 한다는 판매 특성도 있다. 잇따른 절도 사건은 이런 시착 과정을 악용한 사례다.
인근에 사는 50대 회사원은 “피해를 본 매장 사람들이 몹시 당황한 모습이었다”며 “평화롭던 동네에서 비슷한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다니 슬프다”고 말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