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취임 2주년을 맞는 정유경 신세계 회장이 오랜 경쟁사인 롯데의 백화점 점포를 통째로 사들였다. 각지에서 출점 경쟁을 벌이던 두 유통사가 처음으로 점포 직거래에 나선 배경엔 ‘핵심 거점 초격차화’라는 오프라인 유통 전략의 변화가 있다는 분석이다.
◇자신감 얻은 정유경의 결단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백화점의 롯데백화점 부산 센텀시티점 전격 인수는 “축적된 노하우로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는 정 회장의 경영 철학에 기반해 추진됐다.
정 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딸 이명희 신세계 총괄회장의 장녀다. 1996년 조선호텔 마케팅담당 상무보로 경영 참여를 시작해 2009년부터 ㈜신세계 부사장으로 근무하며 유통업 전반을 경험했다. 2015년에는 백화점 부문 총괄사장에 올랐다.
정 회장이 총괄사장에 취임한 2015년 당시 신세계 매출은 2조5640억원, 영업이익은 2621억원이었다. 자산 규모는 7조9000억원 수준이었다. 10년 뒤인 지난해 신세계는 매출 6조9295억원, 영업이익 4800억원을 거두는 회사로 성장했다. 자산 규모는 15조8000억원에 이른다.
그동안 신세계는 매년 1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서울 강남점, 센텀시티점, 대구점, 대전점 등을 각 지역 ‘1등 점포’로 키워냈다. 2024년 정 회장 취임 이후에는 미식과 쇼핑, 문화 콘텐츠를 결합한 복합 공간 ‘하우스 오브 신세계’와 전시·체험 공간 ‘더 헤리티지’ 등을 연이어 선보이며 소비자를 끌어모았다.
이렇게 축적된 자신감을 기반으로 정 회장은 취임 후 첫 초대형 인수합병(M&A)에 나섰다. 신세계는 기존 세계 최대 규모 백화점인 센텀시티점을 인접한 롯데 센텀시티점 공간과 연결해 쇼핑·문화·관광·엔터테인먼트 기능을 아우르는 복합 라이프스타일 거점 ‘신세계 타운’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옥외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센텀시티 내 C부지는 럭셔리 호텔과 레지던스·오피스 등을 포함한 미래형 복합단지로 개발한다.
◇‘선택과 집중’ 나선 롯데
오랜 기간 부산의 ‘터줏대감’으로 불린 롯데가 백화점 점포를 신세계에 내준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롯데백화점은 1995년 부산본점을 시작으로 2001년 동래점, 2007년 센텀시티점, 2009년 광복점을 열며 부산 내 최대 유통업체로 자리 잡았다.
2009년 신세계 센텀시티점이 들어서자 상황이 달라졌다. 스파랜드와 아이스링크 등 콘텐츠를 갖춘 신세계 센텀시티점으로 소비자가 몰려들며 연간 3000억원 수준이던 롯데 센텀시티점 매출은 지난해 1352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롯데백화점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적 판단 아래 센텀시티점 매각 카드를 꺼내 들었다. 2000억원가량으로 추산되는 매각 대금을 확보해 부산본점 등 확실한 성장 거점에 몰아주겠다는 구상이다. 부산 중심 상권인 서면에 있는 부산본점은 캐릭터 등 지식재산권(IP) 전문관을 시작으로 단계적 리뉴얼에 들어간다. 부산 외 지역에서는 올해 인천점과 서울 노원점 리뉴얼을 완료했고, 서울 잠실점은 식품관을 시작으로 전관 개편에 들어갔다.
다점포 전략에서 벗어나 핵심 점포를 키우는 데 집중한 신세계의 전략이 통하며 백화점업계에선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본점과 잠실점, 부산본점에 역량을 모으고, 현대백화점이 더현대서울과 경기 판교점을 대표 점포로 키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