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지난해까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경쟁사 SK하이닉스에 밀렸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하며 HBM이 반도체 시장의 핵심으로 떠올랐지만, 초기 시장 판세를 읽는 데 실패한 탓이다. 2022년 HBM3를 시작으로 5세대 HBM3E에 이르기까지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줘야 했다.
반전의 계기는 올해 마련됐다. 삼성전자는 올해 주력인 6세대 HBM4를 세계 최초로 양산해 엔비디아에 납품한 데 이어, HBM4E 샘플까지 가장 먼저 공급하며 시장의 흐름을 완전히 되돌렸다. 그 결과 올 3분기 HBM 시장 점유율을 40%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추산된다. 내년도 HBM 물량은 이미 완판됐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압도적 성과를 바탕으로 HBM 시장 1위 왕좌를 확실하게 탈환한다는 구상이다.
◇“내년 HBM 공급량 완판”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을 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에서 106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고 29일 발표했다.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107조4405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DS부문 매출은 147조1000억원으로, 이 중 메모리 매출이 140조7000억원이다. 회사 전체 매출(195조원)의 72%가 메모리에서 나왔다.
실적 일등 공신은 HBM이다. 올해 주력인 HBM4의 3분기 매출은 전분기 대비 세 배 이상 증가했다. HBM 전체 매출에서 HBM4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까지 확대됐다.
삼성전자는 이날 장기공급계약(LTA) 체결 현황도 공개했다. 삼성전자는 3분기 기준 대형 고객사 10곳과 장기 계약을 완료했고, 추가로 10곳과 협상을 진행 중이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부사장)은 “2030년까지 생산능력 대비 LTA 비중이 60~70% 수준을 달성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기존 고객사와의 계약기간을 추가로 연장하는 ‘롤링’ 협의도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HBM 기술 경쟁력을 토대로 시장 주도권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김 부사장은 “내년 HBM 공급 물량은 솔드아웃(판매 완료)됐으며, 주요 고객사는 공급량을 늘려달라고 계속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상반기엔 HBM4E를 양산하고 하반기에 생산량을 확대할 계획이다.
◇“파운드리 2㎚ 수주 두 배 늘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사업도 AI 열풍에 힘입어 실적 개선이 가시화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대형 하이퍼스케일러와 고성능컴퓨팅(HPC) 등 고객사들로부터 첨단 2㎚(나노미터·1㎚=10억분의 1m) 수주를 따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강석채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은 “미·중 거래처가 늘며 올해 연간 2㎚ 수주 과제 수가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최첨단 1.4㎚ 공정에선 일부 고객사와 테스트칩을 개발하기로 하는 등 기술 경쟁력 역시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미국 테일러팹도 가동에 들어갔다. 미국 테일러팹의 경우 팹1은 클린룸 가동과 설비 반입을 시작했다.
시스템LSI 사업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2700’이 본격 생산되며 매출이 늘었다. 신규 고객사와 시스템온칩(SoC) 파트너십을 구축하며 맞춤형 SoC 사업도 구체화하고 있다.
반도체와 달리 완제품을 생산하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은 메모리 초호황의 유탄을 맞았다. 스마트폰 사업을 하는 모바일경험(MX)·네트워크 사업부는 2분기에 이어 6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갤럭시Z 폴드8 흥행 등으로 매출은 늘었지만, 스마트폰용 메모리 등 부품 원가 상승 부담을 상쇄하지 못했다.
MX사업부는 내년 수익구조를 프리미엄 제품 중심으로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폴더블폰 시장 성장세에 맞춰 추가 제품군을 출시하고, 트라이폴드 등 폼팩터(외형)를 확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