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 사진=뉴스1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 사진=뉴스1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26일 "특히 정치적인 사건부터 AI 판사를 도입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항소심 무죄 판결을 비판하며 관련 법안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는데요. 방대한 판례를 읽고 법 조항도 찾아주는 인공지능(AI)이라면 재판까지 맡길 수 있을까요.

① 법률 잘 안다고 판사가 될 수는 없다

먼저 따져볼 것은 재판할 권한입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27조는 국민에게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합니다. 제101조도 사법권이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죠. AI의 법률 지식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만으로 판사의 권한을 가질 수는 없단 얘깁니다.

판사가 AI로 판례를 검색하고 기록을 정리하는 경우에도 판단하는 주체는 여전히 판사입니다. 반면 AI가 스스로 유무죄를 결정하고 형량까지 정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법관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 현행 헌법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지부터 검토해야 하죠.

최 의원이 예고한 법안도 AI에 무엇을 맡길지에 따라 논의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AI가 적절한 형량을 제안하고 판사가 검토하는 방식인지, 사람의 판단 없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방식인지 구체화해야 합니다. 재판 업무에 AI를 도입하는 것과 판사를 AI로 대체하는 것은 필요한 제도부터 다릅니다.

한 판사 출신 중진 국회의원은 AI 판사 도입 주장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현실성 없는 얘기"라고 일축하기도 했습니다.

② 실제 판결과 같은 결론 냈지만…정확성 검증은 별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에서는 AI를 대법관 자리에 앉혀보는 실험도 진행됐습니다. 로이터에 따르면 노스캐롤라이나대 로스쿨은 지난 22일 챗GPT 기반 AI 대법관 세 명을 상대로 모의 변론을 열었습니다. 지난해 연방대법원이 판단한 사건을 다시 맡겼는데, AI도 실제 대법원과 같은 결론을 냈습니다.

다만 실험을 맡은 니콜 다우닝 AI 담당 부학장은 판사 대체 가능성을 시험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공개된 판결문과 비슷하게 추론할 수 있는지를 살폈다는 겁니다. AI는 변론에 나선 학생들에게 질문도 했지만, 상호작용은 기계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법률 분야에서 AI가 틀린 답을 내놓는 문제도 남아 있습니다. 생성형 AI는 없는 판례를 만들어내거나 법률 내용을 잘못 설명할 수 있는데요. 이른바 '할루시네이션'은 일반 챗봇뿐 아니라 법률 자료를 검색해 답하는 전문 AI에서도 발견됐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2024년 공개한 연구에서 렉시스넥시스와 톰슨로이터의 법률 검색 AI 세 제품을 평가했습니다. 제품별로 답변의 17~33%에서 잘못되거나 인용한 근거에 부합하지 않는 정보를 생성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법률 자료를 찾아 답변에 활용하도록 설계했는데도 오류가 남았던 것이죠.

③ 편향된 판결, 누가 걸러내고 책임질까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제작된 이미지입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제작된 이미지입니다.
최 의원은 판사의 정치적·정파적 판단을 주장하며 AI 도입을 제안했습니다. 그렇다면 AI는 이런 편향에서 자유로울까요. AI에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없다고 해서 답변도 무조건 공정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AI는 사람이 만든 자료를 학습합니다. 과거 판결에 편견이 담겨 있다면 그것까지 배울 수 있죠. 영국 잉글랜드·웨일스 사법부도 지난해 10월 판사들을 위한 AI 지침에서 "AI가 생성하는 정보에는 학습 자료의 오류와 편향이 불가피하게 반영된다"고 경고했습니다.

유럽평의회 사법효율위원회도 사법 분야 AI 윤리헌장에서 데이터 처리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외부 감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AI가 어떤 과정을 거쳐 답을 내놓았는지 외부에서도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잘못된 판결에 대한 책임도 남습니다. 개발사인지, 시스템을 도입한 법원인지, 결과를 승인한 판사인지 책임 소재를 정해야 하죠. 유럽연합(EU)은 AI법의 입법 취지를 설명하는 전문에서 AI가 법관의 판단을 도울 수는 있지만 대체해서는 안 되며, 최종 결정은 사람이 내려야 한다는 원칙을 명시했습니다.

영국 잉글랜드·웨일스 사법부도 지난 9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AI 결과물을 담당 법관이 검토·검증한 뒤 승인하도록 하고, "AI 도구가 사건의 결과를 결정하거나 법관의 추론·분석·재량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AI를 사용하더라도 "해당 법관이 여전히 전적인 책임을 진다"고도 명시했습니다.

밀린 사건 줄이고…판사가 놓친 자료 찾고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고 재판에 AI를 쓸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할 이유가 많습니다. 일단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재판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가 중요하겠죠. 방대한 기록을 정리하고 관련 법률을 찾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판사가 사건을 검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로버트 버클랜드 전 영국 법무장관은 2023년 하버드 케네디스쿨을 통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AI가 법원의 '업무 부담'과 '사건 적체'를 줄일 수 있다고 봤습니다. AI를 활용하면 사건 처리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접근성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판사가 검토할 자료의 범위를 넓혀줄 수 있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AI가 관련 법 조항과 자료를 폭넓게 찾아주면, 판사가 일부 정보에만 의존하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판결을 대신 내리는 것 외에도 AI를 활용할 여지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AI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재판 보조와 판사 대체를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김태훈 서강대 가상융합전문대학원 교수는 "판사가 AI를 쓰면 좋을 것 같다"면서도 "AI가 판사를 대체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법률과 판례를 검토하는 것 외에도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김 교수는 이 과정에서 '암묵지'도 언급했습니다. 경험으로 익혔지만 말이나 규칙으로 모두 설명하기 어려운 지식을 뜻하는데요. 법 조항을 찾아 적용하는 것만으로는 답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의 판단이 필요하다는 취지입니다. 그는 "법이라는 게 완벽하지 않아서 모호한 부분들이 생기는데, 그 부분들을 AI가 해결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