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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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선박 공격이 격화하면서 흑해가 호르무즈 해협을 제치고 올해 세계에서 선원 사망자가 가장 많은 해상 운송로로 떠올랐다. 무인기와 미사일 공격이 상선과 항만으로 확산하면서 해상보험료가 급등하고 곡물·원유 수송망까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26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올해 흑해에서 공격받은 선박은 570척을 넘었으며 최소 40명의 선원이 사망했다. 해상보안업체 앰브리(Ambrey)와 국제해사기구(IMO)가 집계한 수치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확인된 사망자 24명을 크게 웃돈다. 일부 추산에서는 흑해에서 발생한 선박 공격 건수가 걸프 지역보다 6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흑해는 세계 곡물 공급과 러시아산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다.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인접 해역이지만 유조선과 화물선, 곡물 운반선들은 무인기와 미사일, 폭발물을 실은 무인수상정의 공격 위험에 노출돼 있다. 선주와 선원 단체들은 중동보다 흑해 운항이 더 위험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올레흐 흐리호리우크 우크라이나 해상운송노동조합 위원장은 "흑해에 들어가 우크라이나 항구에 기항하는 것은 사실상 자살행위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선원들이 언제든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흑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위험 해역으로 분류돼 왔다. 전쟁 초기부터 기뢰가 설치됐고 양측의 선박 위성항법 시스템 교란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유엔과 튀르키예가 중재한 곡물 수출 협정으로 한동안 공격이 줄었지만 2023년 협정이 무너진 이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항만 폭격은 계속됐다.

올해 여름부터는 양측의 선박과 항만시설에 대한 보복 공격이 가장 격렬한 수준으로 확대됐다. 앰브리에 따르면 7~9월 3분기 공격받은 선박은 약 387척으로 전분기의 5배를 넘었다. 하루 평균 공격 건수도 4건을 웃돌았다.

로이즈리스트인텔리전스의 브리짓 디아쿤 연구책임자는 "수년간 전쟁이 해상무역에 미친 영향을 추적해 왔지만 이 같은 상황은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공격 확대의 배경에는 우크라이나의 무인기 작전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에서 러시아군의 경유 공급을 차단하기 위해 선박 공격을 시작했지만, 작전 범위가 흑해와 아조우해를 연결하는 케르치 해협의 해상운송까지 확대됐다.

로베르트 브로우디 우크라이나 무인체계군 사령관은 지난달 11주 동안 러시아 선박 300척 이상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공격 대상에는 제재 대상 유조선뿐 아니라 러시아산 곡물을 운송하는 선박도 포함됐다.

이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항구를 이용하는 선박에 대한 공격을 강화했다. 앰브리에 따르면 최근 45일간 발생한 선박 공격의 90%는 러시아에 의한 것으로 분석됐다.

공격 확대의 여파는 우크라이나 최대 항만 지역인 오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최대 민간 항만운영업체 TIS에 따르면 오데사 광역 항만 지역에 들어온 선박은 지난 7월 약 400척에서 9월 10척 미만으로 급감했다.

항만 공격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피해를 보는 선박뿐 아니라 직접적인 공격 표적이 되는 상선도 늘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루마니아 흑해 연안에서 화물을 선적하기 위해 대기하던 선령 37년의 화학제품 운반선 '와인 트레이더'(Wine Trader)가 무인기 2대의 공격을 받았다. 이 선박은 몰도바에서 화물을 싣기 위해 정박 중이었다. 같은 날 밤 약 15㎞ 떨어진 술리나 운하 입구에서도 화학제품 운반선 '야라 J'(Yara J)가 공격받았다.

러시아는 이번 주 우크라이나 연안에서 화물선 5척이 추가로 피격됐다고 주장했다. 루마니아 당국도 목요일 자국 연안에서 또 다른 유조선이 공격받아 선원 1명이 숨지고 3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와인 트레이더의 선박관리회사 시칠십(Sicilship)의 살바토레 아도르노 육상 담당 부책임자는 상황을 믿기 어려울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선박에 대한 공격 자체가 사람을 죽이려는 의도를 담고 있으며, 선원 거주 구역의 같은 지점을 두 차례 공격했다면 살해 의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선박 공격의 양상도 더욱 치명적으로 변하고 있다. 앰브리의 토마스 알렉사 수석 애널리스트는 우크라이나가 과거에는 선박의 화물 적재·하역 연결 장치나 기관실, 방향타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공격했지만 최근에는 선교와 선원 거주 구역을 직접 타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격 범위도 넓어졌다. 흑해전략연구소의 안드리 클리멘코 소장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이 사실상 지리적 경계 없이 확대되면서 다른 모든 흑해 연안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위험은 해상보험 시장에도 반영되고 있다. 선박보험의 전쟁위험 해역을 지정하는 합동전쟁위원회(Joint War Committee)는 지난 9월 중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튀르키예의 영해를 제외한 사실상 흑해 전역을 최고 위험등급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이후 이들 국가의 연안에서도 공격이 발생하면서 선사들은 다뉴브강 유역의 술리나 정박지와 불가리아 연안 운항까지 재검토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FT에 흑해 운항 선박의 전쟁보험료가 선박 가치의 최대 15%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걸프 지역 선박에 적용되는 보험료율의 거의 두 배다. 보험료 부담이 커지면서 선주들은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저렴한 노후 선박을 운항에 투입하고 있다.

상당수 선박은 표준 노동조합 협약 밖에서 운영돼 선원들이 부도덕한 선주의 결정에 더욱 취약해지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운임과 수익성의 차이도 흑해 운항을 위축시키고 있다. 중동에서는 사상 최고 수준으로 오른 해상운임 덕분에 일부 선사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원유를 운송하고 있다. 반면 흑해는 운송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데다 공격 위험까지 훨씬 높아 선박 투입을 꺼리는 선사들이 늘고 있다고 해운업계는 전했다.

해상운송 차질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대체 수송로 확보를 위해 다뉴브강의 소규모 항만을 이용해 왔지만 이들 항만마저 반복적으로 공격받고 있다.

타라스 비소츠키 우크라이나 농업부 장관은 지속적인 공격 때문에 다뉴브강 항만을 통한 곡물 운송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밝혔다.

러시아 역시 흑해 대신 발트해와 극동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하는 비용이 더 높은 수출 경로로 곡물을 돌리고 있다. 해운중개업체 IFCHOR 갤브레이스의 위성 관측 자료에 따르면 흑해와 인근 아조우해 항만의 지난달 선적량은 20만1천t으로 8월의 6분의 1 수준까지 감소했다.

우크라이나의 농산물 수출 감소도 심각하다. 우크라이나 농업부에 따르면 지난 8월 해상을 통한 농산물 수출량은 140만t으로 전쟁 이전보다 약 75% 줄었다. 수출 감소가 장기화하면 농업 생산에 필요한 자금 확보까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크라이나 해바라기유 수출업체 커널(Kernel)의 안드리 베레우스키 회장은 이달 해상운송 차질의 가장 큰 위험이 당장의 선적 지연보다 내년 봄 농경지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농산물 수출 수입이 농가의 연료와 종자, 비료 구매 비용을 충당하는 자금원이라고 설명했다. 항만 수출 통로가 막히고 운임 상승으로 영업이익까지 사라지면 우크라이나의 중소 농가들은 내년 파종에 필요한 현금조차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흑해의 선박 공격이 장기화할 경우 해운업계의 부담은 보험료와 운송비 상승을 넘어 농산물 생산과 수출 감소로 이어질 전망이다. 향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상선 공격 강도, 루마니아·불가리아·튀르키예 인근 해역의 안전성,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항의 운항 회복 여부가 흑해 물류 정상화의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