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사운드 잔나비 /사진=페포니뮤직 제공
그룹사운드 잔나비 /사진=페포니뮤직 제공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10월. 살갗에 닿는 찬 기운은 한 해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하고, 남은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곰곰이 생각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 불린다.

감성이 차오를 때 빠질 수 없는 게 음악이다. 어딘가 적적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가을에 유독 많은 이들이 발라드를 찾는다. 발라드를 듣기 딱 좋은 계절에 그룹사운드 잔나비가 작정하고 발라드 콘서트를 준비했다. 발라드를 전면에 내세운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잔나비는 지난 23일 서울 송파구 KSPO DOME(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발라드 컬렉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in 서울'을 개최했다.

지난해 KSPO DOME에 첫 입성하며 한국 밴드 역사의 새 기록을 썼던 잔나비는 올해 공연 규모를 3회로 늘리며 기세를 이어가게 됐다. 발라드 콘서트는 3회 공연 중 첫 번째 날에만 특별하게 마련한 회차다.

공연 시작 전 장내에는 이상은 '언젠가는', 동물원 '혜화동', 들국화 '매일 그대와' 등이 BGM으로 흘러나와 분위기를 따뜻하고 뭉근하게 만들었다.

이후 무대 위로 최정훈, 김도형이 걸어 나오자 관객들은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잔나비는 공연을 챕터별로 나누어 진행했는데, 오프닝은 '오늘 잔나비 공연이 없었다면 내 모습…'이라는 설정이었다. 'The LONELIEST BOYS in the world(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소년들)'이라는 문구 아래 두 사람은 첫 곡으로 '꿈과 책과 힘과 벽'을 택했다.

잔나비는 메인 스테이지를 등지고 나와 360도로 객석을 둘러볼 수 있는 돌출 무대에서 공연했다. 동심을 추억하게 만드는 영상과 문구가 공개된 데 이어, 잔나비는 마치 작고 아늑한 방 안에서 노래하듯 첫 곡을 소화했다. '꿈과 책과 힘과 벽'에 이어 '나의 기쁨 나의 노래'까지 관객들은 최정훈의 목소리에 집중해 귀를 기울였다.

곧이어 '하나, 둘, 하나! 둘! 셋! 넷!'이라는 두 번째 챕터가 바로 시작되면서, 분위기는 관객들이 함께 손뼉을 치며 노래하는 등 다소 경쾌하게 변모했다. 환한 미소로 '투게더!'를 같이 부르는 관객들을 보며 최정훈은 "오늘을 정말 기다렸다"며 기뻐했다. '한걸음'을 가창하면서는 객석으로 내려가 팬들과 가까이서 소통했고, '돌마로(DOLMARO)' 무대에서는 김도형의 기타 솔로 구간에서 관객들과 섞여 같이 응원을 보냈다. 무대 위아래가 하나 되며 단번에 편안하고 아늑하면서도 자유분방한 무드가 공연장에 내려앉았다.
그룹사운드 잔나비 /사진=페포니뮤직 제공
그룹사운드 잔나비 /사진=페포니뮤직 제공
챕터 구분을 짧게 둔 덕분에 공연은 짜임새 있고 빠르게, 그리고 재미있게 흘러갔다. '초록의 슬픈 노래들'이라는 세 번째 챕터에서 '그 밤 그 밤', '소란한 밤을 지나'까지 부른 뒤에야 잔나비는 첫인사를 건넸다.

객석 곳곳에 허리를 숙여 인사한 잔나비는 우렁찬 환호성에 감격한 듯 "인사만 해도 크게 환호해 주시니 이렇게 복 받은 일은 없을 거다"라면서 "KSPO DOME에서 하는 두 번째 공연이다. 오늘은 처음으로 발라드 컬렉션을 선보이게 됐다"고 소개했다.

잔나비는 감성적인 곡으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지만, 사실 이들은 강렬하고 에너제틱한 록 스피릿을 지닌 팀으로 아주 유명하다. 김도형의 속주에 짜릿하게 고음을 지르는 최정훈의 에너지를 그간의 공연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었다. 이는 각종 페스티벌 무대를 휘젓고 다닌 동력이기도 했다. 동시에 깊고 진한 감성까지 노래할 수 있다는 게 잔나비의 강점이자 정체성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발라드를 콕 집어 공연하게 된 이유에 대해 최정훈은 "얌전하게 공연하는 친구들이라는 선입견이 있길래 아예 그런 공연을 해버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우리 공연이 가진 즉흥적인 느낌은 그대로 살아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계속해 '첫사랑은 안녕히-', '초록을거머쥔우리는' 등의 무대가 관객들의 감성을 채워줬다.

학창 시절 수련회에서 늘 부르던 노래라며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특별히 선보이기도 했다. 잔나비의 추억이 담긴 영상 아래에서 나란히 기타를 둘러매고 노래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뭉클함을 줬다. 중간에 섞여 들어간 최정훈의 웃음소리까지도 하나의 완벽한 노래처럼 완성됐다.
그룹사운드 잔나비 /사진=페포니뮤직 제공
그룹사운드 잔나비 /사진=페포니뮤직 제공
"발라드를 부르는 것도 재미있네요." (최정훈)
"발라드 공연이 잔잔할 것 같지만 뜨거운 무언가는 더 있는 거 같아요." (김도형)


뜨거운 무언가. 실제 공연이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잔나비의 음악으로 관객들은 하나가 됐다. 잔나비 표 발라드는 마냥 쓸쓸하고 슬픈 것으로 치환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낭만'이라는 단어가 앞선다. 덕분에 단순한 재미를 넘어선 묵직하고 은근한 위로와 연대가 현장에 있는 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었다.

팬들에게 바치고 싶은 무대라는 콘셉트의 네 번째 챕터 '레터스 투 JF'에서 잔나비는 '쉬(SHE)', '나는 볼 수 없던 이야기',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 없지만', '사운드오브뮤직',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늙은 개' 등을 불러 감동을 안겼다. 최정훈이 직접 쓴 가사들은 한 소절 한 소절 가슴 깊숙이 박혔다. '계절은 돌고 돈다지만, 단 한 번뿐인 삶이네'.

관객들은 휴대폰 불빛으로 장내에 아름다운 은하수를 만들었고, 최정훈은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감사와 희망을 전했다. 다섯 번째 챕터 '꽃, 피고지는 마음을 알아요?'에서는 '여름가을겨울 봄', '마더', '슬픔이여안녕'을 불렀다.

여섯 번째 챕터 '레크리에이션'에서는 잔나비와 함께하고 있는 밴드 세션, 이른바 구닥다리 영웅들이 돌출무대로 나와 둘러앉은 채로 신나는 곡 메들리를 선보였다. 발라드 사이에서 살짝 고개를 든 흥겨움은 어쩐지 더 매력적이었다. 최정훈은 '뷰티풀'을 부르며 객석을 휘젓고 다녔다. '그래서 우리들은 참 아름다운 한 때라는 거야'라는 가사를 강조하며 관객들과의 벽을 허물고 자유롭게 즐기며 노래했다.

이어 무대로 돌아와 '사랑하긴 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이었나요 우리 함께했던 시간들이 자꾸 내 마음을 가둬두네', '봉춤을 추네', '로켓트' 등 초창기 잔나비를 떠올리게 하는 곡들을 선보여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포 넌 블론즈의 '왓츠 업(What's up)'을 부를 땐 관객들이 모두 기립해 곡에 맞춰 자세를 낮췄다가 세우는 환상적인 호흡을 펼쳤다.
그룹사운드 잔나비 /사진=페포니뮤직 제공
그룹사운드 잔나비 /사진=페포니뮤직 제공
그룹사운드 잔나비 /사진=페포니뮤직 제공
그룹사운드 잔나비 /사진=페포니뮤직 제공
가장 큰 감동을 안긴 건 공연 말미였다. 최정훈은 "항상 저한테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해주는 도형이를 좀 보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언제나 밝은 웃음으로 우리를 보러 와주시고 같이 놀아주시고 추억해 주시는 여러분께도 감사하다"고 팬들을 향한 애정도 드러냈다.

뭉클한 감정과 함께 최정훈은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불렀다. 무지갯빛 조명을 향해 가는 잔나비 두 멤버의 어깨동무한 뒷모습이 진한 여운을 남겼다. 이어 본 무대의 커튼이 열렸고, 하얗고 환한 빛과 함께 '외딴섬 로맨틱' 무대가 시작됐다. 노를 들고 나타나 땀을 뚝뚝 흘리며 이를 힘차게 젓는 최정훈의 모습이 곡의 가사와 맞물려 전율을 일으켰다.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챕터는 '무지개 이어 달리기'였다. '블루버드, 스프레드 유어 윙스!', '모든 소년 소녀들1 : 버드맨', '모든 소년 소녀들 2: 무지개'로 이어지는 구성에 더해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새의 이미지가 강렬한 잔상을 남겼다. 잔나비의 좋은 음악과 그 음악이 주는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로 마음이 풍성해지는 3시간이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발라드 콘서트를 마친 잔나비는 24~25일 같은 장소에서 첫 아시아 투어의 대미를 장식하는 '스웨트 앤 스타더스트(Sweat & Stardust)'를 이어간다.
그룹사운드 잔나비 /사진=페포니뮤직 제공
그룹사운드 잔나비 /사진=페포니뮤직 제공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