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탄 항암제’로 불리는 항체약물접합체(ADC)의 성능을 높이려는 제약·바이오 기업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암세포 표면의 서로 다른 단백질을 동시에 겨냥하거나 새로운 작용 방식의 약물을 실어 보내는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정상 세포의 피해를 줄이면서 기존 치료제에 대한 내성을 극복하는 게 목표다.
◇암세포 찾는 유도장치의 정교화
ADC의 원리는 유도탄과 닮았다. 암세포를 찾아가는 ‘항체’가 유도장치, 암세포를 죽이는 약물인 ‘페이로드’가 탄두 역할을 한다. 둘을 잇는 연결체는 ‘링커’라 부른다. 약물을 온몸에 퍼뜨리기보다 암세포에 집중적으로 전달하도록 고안했다. 항암제 개발 무대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영역이다. 오는 23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막하는 유럽종양학회(ESMO 2026)에선 최상위 임상결과 발표 무대인 프레지덴셜 심포지엄 발표 12건 중 4건이 ADC 연구다.
유도장치를 정교하게 만드는 방법의 하나는 암세포를 찾을 때 활용하는 ‘표지판’ 종류를 늘리는 것이다. 기존 ADC가 주로 암세포 표면의 단백질 한 종류를 인식했다면, 이중항체 ADC는 서로 다른 두 종류를 겨냥한다. 암세포에 더 잘 달라붙고 약물을 세포 안으로 전달하거나, 정상 조직과 암세포를 더 정확히 구별하도록 설계했다. 국내에선 코스닥 상장사인 에이비엘바이오가 이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B7-H3와 ROR1이라는 두 단백질을 동시에 겨냥하는 이중항체 ADC ‘ABL206’의 미국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암세포를 잘 찾는 일만큼 약물을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 다른 국내 상장사인 카나프테라퓨틱스는 항체와 약물을 잇는 기술을 개선해 독성을 낮추는 데 주력한다. GC녹십자와 공동 개발 중인 KNP-701은 c-MET와 EGFR이라는 두 단백질을 동시에 겨냥하는 이중항체 ADC다. 회사는 동물실험에서 비교 약물보다 독성 측면에서 유리한 결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내년 말 임상시험계획(IND) 신청이 목표다.
◇내성 뚫을 새로운 탄두 개발
또 다른 경쟁은 고성능 ‘탄두’ 개발이다. 유도장치가 암세포를 정확히 찾아가도 탄두가 통하지 않으면 치료 효과를 내기 어렵다. 암세포가 실려 온 약물에 내성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ADC에 실리는 약물은 소수의 작용 방식에 치우쳐 있었다. 바이오산업 분석업체 슬루스인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페이로드를 공개한 글로벌 ADC 개발 프로그램 851개 중 735개(86.4%)가 TOP1 억제제 또는 튜불린 억제제를 사용한다. 각각 암세포의 DNA 복제를 방해하거나 세포분열을 막는 약물이다.
코스닥 상장사 큐리언트는 CDK7 억제제와 TOP1 억제제를 함께 탑재하는 ‘이중 페이로드’ ADC 플랫폼을 개발했다.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론자와 손잡고 글로벌 제약사를 대상으로 이 기술을 제공하는 사업에 나섰다. 새로운 작용 방식의 탄두를 만드는 기업도 있다. 오름테라퓨틱은 암세포의 특정 단백질을 분해하는 약물을 항체에 결합한 ‘단백질분해제 항체접합체(DAC)’를 개발 중이다. 최근 미국에서 후보물질 ‘ORM-1153’의 첫 환자 투약을 시작했다. 남기연 큐리언트 대표는 “암세포를 죽이는 것은 페이로드인 만큼 새로운 작용 방식의 약물 확보가 차세대 ADC 개발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세대 ADC에 조단위 투자
글로벌 제약사는 새로운 약물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은 지난 7월 DAC 개발사 파이어플라이바이오를 10억달러(약 1조3500억원)에 인수했다. 항체에 단백질 분해제를 결합하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노바티스도 새로운 작용 방식의 ADC용 약물을 개발하는 마이릭스바이오를 15억달러에 인수했다. 미 바이오기업 제넨텍은 지난 8월 중국 듀얼리티바이오와 총 10억달러 이상 규모의 신규 페이로드 플랫폼 공동개발 계약을 맺었다.
슬루스인사이트가 분석한 차세대 ADC 개발 프로그램은 올해 8월 현재 106개다. 이중표적·이중항체 ADC가 42개, 이중 페이로드 ADC가 11개다. 전체의 약 86%는 비임상 단계로, 사람 대상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