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 전용 선박인 프리즘어질리티호가 호주 다윈 LNG 터미널에서 LNG를 선적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SK그룹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 전용 선박인 프리즘어질리티호가 호주 다윈 LNG 터미널에서 LNG를 선적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지난달 30일 찾은 호주 북부의 인구 15만 명 규모 소도시 다윈에는 20m 높이 탱크 여러 대와 거미줄처럼 얽힌 배관이 있는 공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은 SK이노베이션 E&S 액화천연가스(LNG) 플랜트. 호주 북부 해상 바로사 가스전에서 뽑아 올린 천연가스를 액체로 바꾸는 공정이 이뤄진다.

◇ LNG 공급망 전체 과정 총괄

바로사 가스전과 다윈 플랜트를 통해 SK이노베이션 E&S의 호주 LNG 밸류체인이 완성됐다. 바로사 가스전의 해상 부유식 생산설비(FPSO)에서 뽑아낸 가스는 1차 처리를 마친 뒤 약 380㎞ 길이 해저 배관을 거쳐 다윈 플랜트로 옮겨진다. 다윈 플랜트에서 불순물이 제거된 뒤 액체가 된 가스는 SK그룹의 운반선을 통해 한국으로 옮겨진다. 이후 SK그룹의 발전 및 석유화학 사업에 쓰인다. 경기 용인에 SK이노베이션 E&S 발전소가 완공되면 여기서 생산된 전력이 한국전력공사를 통해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에 공급된다.
호주 바다서 캐낸 가스 380㎞ 터널로…SK 'LNG 직구' 시대 열다
SK이노베이션 E&S는 이 밸류체인을 구축하기 위해 14년 전부터 공을 들였다. 2012년 이 프로젝트에 뛰어들었고, 2014년부터 바로사 가스전 탐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SK그룹은 바로사 가스전 개발에만 16억달러(약 2조1700억원)를 썼다. 현지 시민단체의 반발 등 각종 난관도 뚫어야 했다. 14년의 노력은 올해 초 본격적인 결실로 이어졌다. 지난 1월 다윈 플랜트에서 실은 액화 LNG가 2월 충남 보령 터미널에 입항했다. 국내 민간기업이 해외에서 생산한 LNG를 국내로 들여온 첫 번째 사례다. SK이노베이션 E&S가 ‘가스 생산→액화→수송→국내 도입’까지 LNG 공급망 전 과정을 총괄한다는 의미도 있다.
호주 다윈에 있는 SK이노베이션 E&S의 LNG 플랜트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호주 다윈에 있는 SK이노베이션 E&S의 LNG 플랜트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SK는 바로사 프로젝트의 지분 37.5%를 보유하고 있다. 이곳은 연간 LNG 350만t을 생산할 수 있다. SK는 지분 비율에 따라 연간 약 130만t의 물량을 국내에 들여올 수 있다. 이는 지난해 한국 총 LNG 수입량의 3%에 달하는 양이다. 여기에 연간 110만 배럴의 초경질유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경질유는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의 원료다.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 E&S의 호주 밸류체인이 LNG 가격 변동성이 커질 때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현물 가격이 급등하거나 공급량이 줄더라도 안정적으로 LNG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LNG 가격은 최근 급등했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열기로 글로벌 에너지 수요가 늘어난 데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공급 불확실성이 커지면서다. SK이노베이션 E&S가 구축한 호주 LNG 공급망은 중동 항로를 거치지 않는다.

◇ LNG 통합 밸류체인은 ‘옵션의 경제’

SK그룹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 전용 선박인 프리즘어질리티호가 호주 다윈터미널에서 선적을 완료한 뒤 출항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SK그룹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 전용 선박인 프리즘어질리티호가 호주 다윈터미널에서 선적을 완료한 뒤 출항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SK는 미국에서도 통합 LNG 공급망을 확보했다. 미국 오클라호마주에 있는 우드포드 가스전을 2014년에 확보해 프리포트 LNG 터미널을 거쳐 국내로 들여왔다. LNG 운반선 4척도 운영하고 있다. 다윈에서 만난 강륜권 SK이노베이션 E&S 부사장(경영기획실장)은 미국·호주·한국 등에서 촘촘하게 구축한 LNG 공급망을 ‘옵션의 경제’로 정의했다. 단순히 생산량을 늘려서 원가를 낮추는 ‘규모의 경제’ 전략을 넘어 가스 생산부터 액화·운송·판매·발전까지 단계마다 선택지를 확보하고, 시황에 맞는 카드를 골라 쓰는 방식이다. 강 부사장은 “가스 채굴과 이송, 다운스트림에서 여러 옵션을 확보하면 이를 연결하는 조합의 경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다양한 변수에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LNG 시장이 현재 예상과 달리 수요가 꺾이더라도 통합 밸류체인이 유리하다는 게 강 부사장의 주장이다. 세계 각국이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확대하거나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둔화하면 LNG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 이에 강 부사장은 “회사는 발전소라는 다운스트림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발전소 입장에서는 오히려 LNG 원가 절감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E&S는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베트남 꾸인랍 지역에 1.5GW급 LNG 복합화력발전소와 터미널을 짓는 사업을 추진하고, 내년 중국 간위 LNG 터미널 운영도 검토 중이다. 회사는 시장 전망도 밝게 내다보고 있다. 한국·일본·대만이 주도하던 시장에 중국과 유럽이 주요 소비처로 떠올랐고 동남아 신흥국 수요도 늘고 있어서다. 강 부사장은 “연 4억t 규모인 세계 LNG 시장은 2036년 8억t으로 커질 것”이라며 “공급처와 해외 수요처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글로벌 LNG 플레이어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다윈=강해령 기자 hr.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