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는 형법이 제정된 1953년부터 시행된 대표적인 경제 형벌이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임무에 위반하는 행위를 해 이익을 취하거나 타인에게 손실을 끼쳤을 때’ 처벌하는 조항이다.

그러나 법 조항이 모호하고 구성 요건이 광범위해 정상적인 경영 판단까지 형사 처벌 대상이 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경영자의 과감한 의사결정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경제계에서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경영 판단이 존중받으려면 배임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나온 배경이다.

국내에서는 수사기관이 경영자를 배임죄로 재판에 넘겼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이 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이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추진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목적으로 합병 비율을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게 산정했다며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이 부회장 등을 기소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물론 함께 기소된 최고경영진 13명 모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수사 시작부터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7년이 걸렸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최근 10년(2014~2023년)간 국내에서 배임죄로 기소된 인원은 연평균 965명으로, 연평균 31명인 일본보다 약 31배 많았다.

미국에는 배임죄라는 범죄가 아예 없다. 그 대신 민사상 손해배상 등으로 규율한다. 미국은 경영 판단 원칙을 확립해 경영자가 정상적인 경영 목적으로 판단을 내렸다면 회사에 손해를 끼쳤어도 책임을 면해준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