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에토레 파가노가 자신의 연주관과 계획에 대해 말하고 있다.  최혁 기자
첼리스트 에토레 파가노가 자신의 연주관과 계획에 대해 말하고 있다. 최혁 기자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올해 첼로 부문 왕관은 이탈리아 로마 출신의 스물두 살 청년 에토레 파가노에게 돌아갔다. 지난 5월 거머쥔 우승의 열기가 채 식기 전, 첫 공식 우승자 투어로 한국을 찾은 그를 서울 롯데콘서트홀 무대 뒤편에서 한국경제 아르떼가 단독으로 만났다. 지난달 라흐마니노프 소나타로 서울의 객석을 뜨겁게 달군 직후였다. 파가노는 지난 10일 ‘장한나의 대전그랜드페스티벌’에서 장한나 예술의전당 사장이 지휘한 폐막 공연을 맡기도 했다.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일정, 결선 직전 일주일간 외부와 단절된 채 감금되다시피 곡을 갈고닦아야 하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악명 높은 시험대다. 그러나 파가노는 “오롯이 음악에만 몰입할 수 있었던 축복의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우승 뒤에는 판을 읽는 날카로운 수싸움이 있었다. 결선 무대에서 대부분의 경연자가 안전한 드보르자크나 쇼스타코비치를 집어들 때, 그는 무대 연주 경험이 단 한 번뿐이던 프로코피예프의 협주곡을 꺼내 들었다. 명백 히 ‘위험한 선택’이었다. 파가노는 “프로코피예프는 과거 우승작으로 선택된 적이 드물지만, 특유의 신고전주의적 명료함과 이탈리아적 생동감이 넘친다”며 “최근 콩쿠르의 흐름을 읽고 노래하는 듯한 즐거움이 가득한 작품을 고른 게 통했다”고 말했다.

우승 특전으로 그에게는 ‘현대 첼로의 아버지’ 파블로 카잘스가 쓰던 1733년산 명기 ‘고프릴러 카잘스’를 연주할 특권이 주어졌다. 300년 가까이 된 악기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두려움도 잠시, 그는 빠르게 본질을 짚었다. “악기는 박물관의 전시품이 아닌 연주의 도구입니다. 악기의 이름값에 눌리는 대신, 내가 악기를 지배해 나만의 소리를 끌어내야 하죠.” 그의 음악적 뿌리 또한 거장들의 계보와 닿아 있다. 안토니오 메네세스를 통해 카잘스의 섬세한 프레이징을, 다비드 게링가스를 통해 러시아 악파 로스트로포비치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삼투압처럼 흡수했다. 특히 3년 전 만난 거장 미샤 마이스키에 대해서는 “화성적으로 힘을 주어선 안 될 대목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데도 마법처럼 아름다웠다”며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꾸는 연주자만의 카리스마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파가노가 추구하는 연주는 매끄러운 완벽함이 아니다. 관객의 취향에 맞추려 애쓰기보다 음악가 자신의 서사를 당당히 던지는 연주다. “완벽함 속에서도 작은 균열과 거슬림을 남겨 청중의 자아(Ego)를 흔들고 싶습니다. 그것이 음악이 남기는 진정한 잔향이죠.” 그는 젊은 음악가로서 안전한 고전 레퍼토리에만 안주하지 않고, 20세기 및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널리 알리는 불꽃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