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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비싸게 만들고 가격은 뚝"…전력시장 '이상한 계산법'
무너진 시장원칙에 재생에너지까지 손실
14일 전력업계 등에 따르면 송전망 제약 등으로 억지로 가동됐으면서도 전력도매가격을 결정하는 자격에서 제외된 고원가 발전소는 2022년 하루 평균 17.8곳에서 올해 9월 기준 30.7곳으로 1.7배 급증했다.전력도매시장은 원칙적으로 가장 비싼 발전기의 생산 원가에 맞춰 시장가격(SMP)이 결정되는 '경제급전' 방식으로 운영된다. 전력망 사정으로 발전단가가 비싼 화력발전소를 추가로 돌려야 한다면, 그에 따른 비용이 도매가격에 정직하게 반영돼 가격이 오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전력거래소는 하루 전 발전계획에 따라 송전망 혼잡으로 강제 가동된 발전기의 가격 결정 자격을 박탈하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국소적인 전력망 문제로 억지로 돌린 고비용 발전기가 전국 전력가격을 과도하게 밀어올리지 못하게 막겠다는 취지였다. 당초 이 규정은 태풍 등 비상 상황이나 열흘 이상 이어지는 대규모 공사 때만 극히 제한적으로 적용됐다.
특히 한전의 현장 공사 계획이 변경되거나 취소될 때 시장이 받는 충격은 더 크다. 한전이 지난달 8일 '9~10일 신가평 변전소 공사를 하겠다'고 등록하자 수도권 고원가 발전기들의 가격 결정 자격이 무더기로 박탈되며 9일 낮 도매가격은 전날보다 56원 폭락했다. 그러나 정작 당일 공사는 진행되지 않고 취소됐다. 취소된 서류상 계획 하나에 시장가격이 요동쳤지만, 규정상 이미 확정된 도매가격은 사후에 되돌릴 수 없어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사업자와 민간 화력발전사들만 수익을 깎이는 피해를 떠안았다.
이러한 가격 왜곡은 재생에너지와 고효율 민간 발전사에 집중되고 있다. 대다수 태양광 사업자는 도매가격에 연동해 정산을 받기 때문에 도매가격 급락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입는다. 가스를 저렴하게 직도입해 원가를 낮춘 고효율 민간 발전사 역시 정당한 효율 개선 이익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송전망 문제로 억지로 돌아간 고원가 발전기는 도매가격 하락에 따른 연료비 부족분을 '변동비보전정산금'으로 사후에 메워받는다. 친환경 전력을 생산하거나 원가 절감에 투자한 민간 사업자는 마진을 깎이고, 비싼 발전기는 원가를 챙겨가는 역차별 구조가 굳어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투명한 시장운영 필요
정부가 도입을 검토 중인 지역별 도매가격제(LMP)를 두고도 우려가 커진다. 수도권·비수도권 2개 권역 모델이 도입될 경우 비수도권 연계선로에 공사나 제약이 잦아질수록 비수도권 도매가격이 가파르게 하락하기 때문이다. 전력망 건설과 공사 일정을 독점하는 한전이 자잘한 정비 제약을 자주 걸어 지방 발전사에 줄 정산금을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역(逆)인센티브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한전 측은 자의적인 가격 조작 의혹을 일축했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발생하는 공사 일정 변경을 하루 전 시장 체제에서 실시간 반영하기는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전 관계자는 "신가평 변전소 작업은 다른 공사와의 중복으로 거래소 요청에 따라 사전 협의를 거쳐 일정을 바꾼 것일 뿐"고 설명했다. 반면 거래소 측은 "한전이 당일 오후 늦게 공사 취소를 통보했다"고 말했다. 공사 취소 책임론에 대해 두 기관 간 입장이 다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이 단순한 전기요금 인상 요구나 특정 업계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불확실한 단기 공사 계획 하나로 도매가격이 급락하고 사후 복구 장치조차 없는 제도적 결함을 바로잡아, 전력시장 본연의 가격 신호와 투명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단기적으로는 실제 계통 운영 실적을 반영해 도매가격을 사후에 정정·정산하는 장치를 두고, 중장기적으로는 15분 단위 수급에 맞춰 정산하는 '실시간 시장'을 조기 도입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아울러 한전과 거래소가 독점한 송전선로 공사 내역과 혼잡도 등 핵심 계통운영정보를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공개해야 시장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력망 정보를 둘러싼 투명성 논란은 발전소를 전력망에 꽂는 접속 단계로도 번지고 있다. 이날 전국태양광발전협회와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은 선로 여유 용량 등 핵심 계통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 인허가 과정에서 투자 손실을 입었다며 정부의 정보공개 기준 미제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할 예정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