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전북 군산 새만금개발청 앞에 새만금피해주민 비상대책위원회가 내건 현수막(사진 왼쪽)이 붙어 있다. 같은 날 텅빈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  사진=안정훈/이선아 기자
지난 12일 전북 군산 새만금개발청 앞에 새만금피해주민 비상대책위원회가 내건 현수막(사진 왼쪽)이 붙어 있다. 같은 날 텅빈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 사진=안정훈/이선아 기자
영국은 2016년 6월 유럽연합(EU) 탈퇴를 발표했다. 실제로 탈퇴한 것은 2020년 1월이다. 3년7개월의 기간은 불확실성 그 자체였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문제, EU 분담금, 자유무역협정(FTA), 세금, 시민권 등 모든 것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이 기간 기업은 투자를 줄였고, 국가 생산성은 2~5%가량 후퇴했다. 영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6년 3만9943파운드에서 2020년 3만7065파운드로 줄었다.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때 사회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법과 규제, 계약 등 사회적 규칙의 예측 가능성이 무너지면 사회는 엄청난 거래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중남미에서 개인경호원이 산업으로 자리 잡은 배경이며, 파키스탄 도심에서 양보를 기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타인과 국가, 제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사회는 병들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는 5년마다 예측 불가능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정권이 바뀌면 입시, 부동산, 연금, 노동 등 국민의 삶과 직결된 정책이 손바닥 뒤집히듯 한다. 정책 불확실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새만금이다. 새만금 개발이 대통령 선거에 등장한 것은 1987년이다. 대통령이 아홉 번 바뀌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대선과 총선에서 주요 정당은 새만금 개발을 공약집에 넣고 있다. 그사이 주민은 인생을 계획하지 못했고, 기업은 새만금에서 기회를 찾으려다가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 한국 사회의 예측 가능성 점수는 얼마나 될까.

"명품도시·글로벌 거점" 구호만 거창…새만금은 왜 '희망고문의 땅' 됐나
호남표 얻으려 시작한 국책 사업…믿고 기다린 기업·주민만 피해

김제·만경평야를 묶은 곡창지대를 이 지역에선 앞 글자를 따 ‘금만(金萬)평야’로 불렀다. 입에 달라붙게 순서를 바꾸면 ‘만금’이 된다. 만금이란 단어가 처음 알려진 건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유세전에서다.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 소속 노태우 후보가 호남표를 얻기 위해 대규모 개발 공약을 내놨다. 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2년이 흐른 1989년, 정부는 새만금 개발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전북 군산·김제·부안의 앞바다를 메워 서울 여의도 면적의 100배에 달하는 2억8300만㎡의 땅을 조성한다는 구상이었다. 이렇게 한반도 지도를 바꾸는 ‘단군 이래 최대 국책 간척사업’은 1991년 첫 삽을 떴다.
40년째 아직도 '개발 중'…새만금은 왜 '희망고문의 땅' 됐나

수차례 개명하고 40년째 개발 중

이름이 생긴 지 40년이 지난 새만금 사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당초 완공 목표(2004년)는 진작에 지났지만, 아직도 대선·총선 때마다 주요 정당의 공약집에 포함된다. 그동안 사업 앞엔 ‘명품복합도시’(2010년), ‘창조적 녹색·수변도시’(2011년), ‘글로벌 경제협력 거점’(2014년), ‘글로벌 녹색성장 중심지’(2021년) 등의 수식어가 붙었다가 떨어져 나갔다. 1990년 푸둥 개발을 시작한 중국 상하이가 글로벌 메가시티로 변하는 동안 벌어진 일이다.
40년째 아직도 '개발 중'…새만금은 왜 '희망고문의 땅' 됐나
매번 땅의 이름이 바뀌면서 기업은 땅을 어떻게 활용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OCI는 2010년 새만금에 태양광 공장을 짓는 내용의 10조원 투자계획을 내놨다가 철회했다. 2011년 7조6000억원 규모의 그린에너지 투자계획을 발표한 삼성은 사업을 구체화하지 못하고 접었다. LG CNS는 새만금에 ‘스마트 바이오파크’라는 사업명으로 스마트팜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가 거둬들였다. 업황 부진과 농민 반발 등의 이유도 있었지만, 불확실한 사업이 프로젝트를 좌초하게 한 측면이 크다. 작년 12월 이재명 대통령이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이제는 더 이상 희망고문하지 말라”고 말한 배경이다.

현재 새만금에서 개발이 이뤄진 곳은 북측의 새만금국가산업단지, 이른바 1산단밖에 없다. 1산단의 전체 18.5㎢, 9개 공구 가운데서도 3·7공구는 매립만 했다. 8공구는 매립 중이며 4·9공구는 시작도 안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새만금을 5년 만에 다시 그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군산시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국토연구원 관계자는 “새만금 개발에 들어간 지 35년이 지났지만, 농생명용지를 제외하면 부지 조성 성과는 국가산단 일부와 수변도시 정도밖에 없다”며 “초기 단계부터 한계가 존재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산업연구용지를 기존 12.1㎢에서 37.5㎢로 세 배 넘게 늘리고, 산업거점도 1산단 중심의 단일 체제에서 네 곳으로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산단은 김제 배후도시용지를 산업용지로 바꿔 새로 조성하고, 3산단은 이미 매립된 부안 관광·레저용지 일부를 산업용지로 전환한다. 4산단은 김제권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RE100 산업거점으로 새로 그렸다. 25.4㎢에 달하는 2~4산단의 신규 산업용지 가운데 상당 부분은 아직 매립 전 단계다. 주인을 정하지 못한 이 부지엔 지금도 바닷물이 들락거리고 있다.

‘제2의 새만금’ 돼가는 가덕도

40년째 아직도 '개발 중'…새만금은 왜 '희망고문의 땅' 됐나
동쪽의 영남에서도 ‘제2의 새만금’이 진행 중이다. 1995년 부산시가 부산경제종합발전대책의 일환으로 넣은 신공항 후보지 중 하나인 가덕도다. 이곳은 2002년 김해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던 중국 민항기가 인근 돗대산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동남권에도 안전한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반응해 2006년 동남권 신공항 사업 검토를 지시했다.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대통령 선거마다 주요 대선후보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약집에 집어넣었다. 선거마다 시끄러웠다. 당장이라도 가덕도에 새 공항이 생길 것처럼 들썩였다. 대구·경북에선 가까운 밀양을 후보지로 같이 거론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지역 갈등으로도 번졌다.

하지만 약속이나 한 듯 당선된 뒤에는 모두 백지화했다. 근거는 정부마다 시행한 예비타당성조사 결과였다. 이명박 정부는 2011년 밀양과 함께 가덕도를 입지 평가한 결과, 경제성(비용 대비 편익·B/C)이 각각 0.73과 0.7로 나온 것을 근거로 공약이던 동남권 신공항 사업을 철회했다. 박근혜 정부는 여기에 김해공항 확장까지 얹어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에 용역을 줬다. 그 결과 1000점 만점에 김해공항 818점, 밀양 683점, 가덕도 653점으로 조사돼 김해공항 확장안을 최종안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부산·경남 표심을 의식해 가덕도를 되살려냈다. 김해공항 확장안을 폐기하고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제정해 확정했다. 이에 따라 길고 긴 추진과 철회의 가덕도 반복은 일단 끝나는 듯했다.

그사이 낭비된 행정력과 국가적 역량은 차치하더라도 이제는 공사비 증가와 경제성 저하라는 대가를 치러야 할 처지에 놓였다. 국토부의 자체 사전타당성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가덕도신공항의 B/C는 2022년(0.51)보다 낮은 0.36이었다. 이마저도 최근 공사비 증액을 두고 시공사인 대우건설과 정부가 이견을 보이고 있어 다음달로 예정된 착공 여부 역시 불투명하다.

가덕도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설회사 관계자는 “똑같은 부지를 두고 선거 전후와 정권마다 ‘적합’ ‘부적합’ 판단이 뒤집힌 것은 국가 사업이 기술적·실증적 검토보다 정치적 계산에 따라 좌우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가덕도=이선아/새만금=안정훈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