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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준의 인문학과 경제] 시장경제로 우뚝 선 나라는 어떻게 패망하나?
평등 앞세워 탁월함 억누른 피렌체, 공국 전락
인적 자원이 고갈될 때 나라는 쇠퇴한다
윤혜준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인적 자원이 고갈될 때 나라는 쇠퇴한다
윤혜준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천연자원이 부족한 내륙 구릉지대 도시인 피렌체의 국부 창출 근간은 야심에 차고 근면하며 재주가 뛰어난 인적 자원이었다. 능력 있고 야망이 넘치는 개인들과 이들을 낳은 가문들은 이익과 명예를 놓고 경쟁했다. 경쟁은 종종 정쟁으로 확대됐고, 유혈사태로 번지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서 성장한 귀차르디니는 공직자로서 현명하게 처신한 덕에 고위직 임무까지 수행했다.
그는 은퇴 후 두 권의 저서를 썼다. 하나는 <이탈리아의 역사>로, 1492년부터 1534년까지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복잡한 전쟁을 다뤘다. 또 다른 책은 그가 공직자로 활동하면서부터 짬짬이 본인의 깨달음을 적어놓은 <리코르디>다.
‘기록들’이라 해석되는 <리코르디>에 담긴 피렌체 공화국에 대한 귀차르디니의 분석은 무척 예리했다. 책에 따르면 피렌체의 시민들은 항상 평등을 외친다. 평등을 내세우는 그들은 누가 조금이라도 자신들보다 더 탁월한 성취를 할 경우, 시기심에 불타 그를 명예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한다. 시민의 다수는 서민이다. 따라서 큰 부자는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부자가 되기를 열망한다. 이들은 정변이 발생하면 입맛을 다신다. 권력 재편 과정에서 실각한 부자들의 재산을 몰수해 나눠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을 선동하는 자들은 늘 개혁을 외치며 자신들이 권력을 잡아 새로운 법을 제정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공언한다.
그러나 나라의 형편은 이들의 개혁 이전보다 더 나빠졌다. 개혁을 추진한 자들 스스로가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채 온갖 돌발 변수에 끌려다녔기 때문이다. 이렇듯 귀차르디니가 간파한 대로 정변의 연속 끝에 피렌체 공화국은 마침내 1532년 정치적 자유를 모조리 잃고, 메디치 가문이 대대로 마음 놓고 다스리는 공국으로 변했다. 이후 피렌체는 더 이상 마키아벨리, 귀차르디니, 미켈란젤로 같은 뛰어난 인물을 배출하지 못했다.
피렌체 공화국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실들을 오늘날 대한민국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근면하고 뛰어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제조업과 수출로 부유해졌고 이제 문화강국의 대열에 오르려 하는 대한민국은 피렌체 공화국과 구조적으로 비슷하다. 아울러 피렌체 공화국의 질병들을 우리도 앓을 수 있다. 평등 의식이 낳은 시기심, 집단적 대립과 정쟁, 잦은 권력 개편과 급속한 개혁의 연속으로 점철된 공화국은 나라 발전의 원동력이던 인적 자원이 고갈된 채 쇠퇴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을 역사는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