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업계에서 반도체를 담보로 대규모 자금을 끌어오는 ‘구조화 금융’이 확산하고 있다. AI 기업들의 투자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거나 수익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위험이 금융시장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앤트로픽의 AI 반도체 확보를 지원하기 위해 아폴로·블랙스톤 등 금융사들과 함께 600억달러(약 80조원)를 조달하고 있다. 이를 위해 특수목적법인(SPV)이 설립된다. 이 법인은 투자자로부터 조달한 자금으로 텐서처리장치(TPU) 등 AI칩을 확보하고, 칩을 앤트로픽에 임대한다. 앤트로픽이 AI칩 사용료를 내면 SPV는 원리금을 상환한다.

금융사들은 대규모 자금을 원활히 조달하기 위해 대출 600억달러 중 420억달러를 선순위 부채로, 나머지를 후순위로 설정했다. 선순위 투자자는 후순위보다 먼저 돈을 돌려받는 대신 낮은 금리를 받는다. 브로드컴은 선순위 대출에 일부 보증을 제공한다. 후순위 투자자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손실이 발생하면 먼저 부담한다.

주택담보대출, 비행기 리스, 자동차 할부 등 자산의 현금흐름을 이용해 유동화하는 구조화 금융은 월가에서 널리 쓰이는 금융 기법이다. 이번엔 AI 반도체가 구조화 금융의 기초자산으로 등장한 것이다. 문제는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반도체의 가치가 빠르게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채권을 매입한 보험사와 연기금, 은행 등으로 손실이 옮겨갈 수 있다. 원리금 기반인 오픈AI·앤트로픽 등의 수익성이 예상에 못 미칠 경우에도 손실이 발생한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주택담보대출 등 기초자산 부실이 여러 금융상품과 투자자로 번졌다. AI 산업의 막대한 투자 위험이 금융시장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배경이다. 경우에 따라선 연금·보험금 등 미국인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금융사들도 ‘AI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

물론 AI 기업들은 이를 통해 직접 회사채를 발행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현금이 모자란 오라클은 채권을 계속 찍어내며 회사채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오라클이 지난 2월 발행한 40년 만기 채권은 미국채 대비 수익률이 1.95%포인트 높았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