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89억원 과징금 LPG 담합
피해자 손배소 16년째 1심 중
가상 경쟁가격 놓고 재판 장기화
구매 입증 어렵고 보복 우려도
"과징금 국고로…피해 구제 필요"
수조원대 담합이 적발돼도 피해를 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손해를 보전받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은 국고로 귀속되는 데다 피해기업이 배상받으려면 별도 민사소송을 통해 피해액을 직접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손해액 산정을 둘러싼 공방으로 소송이 십수 년간 이어지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손해액 입증에 소송 장기화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1부는 다음달 12일 SK가스 등 액화석유가스(LPG)·정유업체를 상대로 제기된 손해배상소송의 변론기일을 연다. 이 소송은 2011년 2월 시작돼 15년9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전국 민사합의 사건의 1심 평균 처리 기간이 13개월인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이 소송은 공정위가 2009년 적발한 LPG 가격 담합 사건에서 비롯됐다. 당시 공정위는 SK가스, E1 등 6개사가 2003~2008년 LPG 판매가격을 담합한 사실을 적발해 총 6689억원의 과징금을 의결했다. 이후 개인택시 운전자와 운송업체 등 LPG 구매자들이 2010~2011년 손해배상소송 3건을 제기했지만 아직 1심에 계류 중이다. 원고는 법인사업자 등 1587명으로, 합산 소송액은 약 140억원이다.
담합 피해액은 통상 실제 구매가격과 담합이 없었다면 형성됐을 ‘가상 경쟁가격’의 차이를 토대로 산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LPG 담합 소송에서도 감정과 사실조회 등 증거조사 절차가 장기간 이어졌다.
◇中企, 소송 제기부터 난관
국가와 공공기관이 담합 피해에 대해 배상 판결을 받아내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7월 서울중앙지법은 고용노동부 전용회선 입찰을 담합한 KT,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에 44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올해 4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관련 담합 사건에서도 30억원대 배상 판결이 나왔다.
이에 비해 중소기업은 소송 제기부터 쉽지 않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2021~2024년 인쇄용지 담합으로 중소 인쇄업체들이 업체당 평균 9360만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한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피해를 보상받은 기업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인쇄협동조합연합회 관계자는 “거래명세서나 세금계산서 등 피해를 입증할 증거서류를 제출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을’의 입장에서 보복을 우려해 소송 참여를 기피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준우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중소기업은 손해액 산정이 어렵고 변호사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 소송을 할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며 “사기업 간 거래에서는 지속적인 거래관계를 고려해 피해 기업이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 검찰이 기소한 16조3961억원 규모 석유화학 담합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PVC 등 원재료 구매기업들이 배상받으려면 별도 민사소송을 통해 피해 규모를 입증해야 한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담합 과징금은 국가가 가져가는데 정작 피해 기업은 별도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며 “피해자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조사에 협조해도 실질적인 피해 구제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