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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인프라' 뒷전…동해가스전 철거 밀어붙이는 정부
"초기 비용 큰 CCS, 정부가 키 잡아야 하는데"
동해가스전 인프라 고철 전락 위기
동해가스전 인프라 고철 전락 위기
12일 정부 안팎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최근 한국석유공사에 동해 폐가스전 해상 플랫폼에 대한 원상회복 명령 공문을 보냈다. 당초 국회는 지난 7월 해저광물자원개발법을 개정해 CCS나 해상풍력 등 탄소중립 산업으로 시설을 재활용할 경우 원상회복 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신설하고 철거 이행 기한도 5년으로 늘렸다. 국가적 탄소 감축에 필수적인 기존 인프라를 살려 쓰자는 취지에서다.
탈탄소 핵심 거점 될 수 있는데
동해가스전 개발·관리 부처인 산업부가 개정안 취지와 달리 철거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탄소감축 인프라 개발이 주업무가 아니라서다. 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 간 통폐합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석유공사가 대규모 재정이 들어가는 신규 사업을 벌이는 것에 비판적인 이유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CCS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탄소 다배출 제조업이 공정상 불가피하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직접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꼽힌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해외 주요국은 초기 경제성이 부족한 CCS 인프라에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투입하고 폐유·가스전을 국가 탄소저장 거점으로 신속하게 전환하고 있다.
국내 첫 가스 생산을 이끌었던 동해 가스전은 조광권 만료로 문 닫은 이후 탄소포집저장(CCS) 인프라로의 전환이 추진돼왔다. 해상플랫폼과 지하 배관(주입정) 등 기존 시설을 재활용하면 새로 구축하는 것보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동해 폐가스전이 국내 탈탄소 생태계의 핵심 거점이 되면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 해외 폐가스전으로 탄소를 싣고 가 저장하는 국경통과 방식보다 수송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국내 인프라를 활용한 기술 실증을 통해 관련 산업 생태계를 육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가치도 크다.
CCS는 단순한 온실가스 감축 수단을 넘어 현대건설, GS칼텍스, 포스코 등 국내 중후장대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뛰어드는 신(新)성장 동력이다. 최근 현대건설 등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들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주관하는 대규모 탄소 액화·벙커링 허브 실증 국책과제에 대거 참여해 포집·액화부터 운송, 저장에 이르는 전 주기 엔지니어링 기술 고도화에 나섰다. 현대건설은 과거 동해 폐가스전 활용 예비타당성 실증사업의 사전 기본설계까지 직접 수행했을 정도로 업계는 국내 저장 거점과 연계된 밸류체인 선점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성이다. 당초 동해 폐가스전 사업은 연간 120만t의 탄소를 매립하는 대규모 인프라 구축으로 기획됐다. 그러나 탄소를 포집해 바닷속에 묻는 데 드는 비용에 비해 탄소배출권 가격이 턱없이 낮아, 기업 입장에서 배출권을 직접 사는 것보다 실익이 없는 탓에 예비타당성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뒷전 밀린 해상 탄소저장 인프라 개발
이에 기후부는 내년도 예산에서 400억원을 반영해 폐가스전을 소규모 테스트베드로 삼는 파일럿 테스트라도 우선 추진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가스전 관리 부처인 산업부가 원상회복(철거)에 나서면서 이 같은 소규모 기술 검증마저 첫 삽을 뜨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석유공사는 과거 동해 가스전 개발 당시 회계 장부에 미리 빚으로 반영해 둔 약 3000억원 규모의 충당부채를 털어 실제 철거 비용으로 집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과 석유화학 등 산업계는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 국가 주도의 초기 CCS 인프라 조성이 절실하다고 호소한다. 정부가 설정한 2035 NDC 상한선(2018년 대비 61% 감축)을 맞추려면 총 감축 목표량 4억5280만t 가운데 2030만t(4.5%)을 탄소포집활용저장(CCUS)으로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내 산업 특성상 CCUS 감축 의무 부담이 큰 데 반해, 현재 국내 탄소배출권 가격은 t당 3만원 안팎에 불과하다. t당 20만원 가량으로 추산되는 막대한 탄소포집저장 비용을 감안하면 시장에서 싼 배출권을 사서 메우는 편이 훨씬 유리한 셈이다. 결국 배출권 가격이 최소 t당 20만원 이상으로 오르거나 파격적인 정부 보조금이 주어지지 않는 한, 민간이 단독으로 수천억 원의 투자 리스크를 짊어지고 CCS에 뛰어들기 불가능한 구조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초기 인프라라는 키를 쥐고 있는 정부가 길을 열어주지 않으면, 민간이 공들여 쌓은 탄소포집 및 운송 등 기술도 실증 기회가 멀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탄소감축 주무 부처인 기후부가 포집한 탄소를 묻는 CCS 기술보다 재활용하는 탄소포집·활용(CCU) 기술 육성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