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명촌 김치. 현대백화점 제공
명인명촌 김치. 현대백화점 제공
배춧값이 내려도 김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다. 김장철을 한 달여 앞두고 배추 가격이 지난해보다 낮아지고 가을배추 생산량도 늘어날 전망이지만, 가정에서 김치를 담그는 비중은 해마다 줄고 있다. 대신 필요한 만큼 사 먹는 소용량 포장김치와 ㎏당 3만원에 이르는 고급 김치가 식탁을 파고들고 있다. 한꺼번에 담가 겨우내 먹던 김치가 그때그때 골라 사는 상품으로 바뀌면서 유통업계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배추 한 포기 5929원…작년보다 8.5%↓

10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지난달 배추 상품 한 포기의 평균 소매가격은 5929원으로 전년 동월보다 8.5% 낮았다. 평년 가격인 6790원과 비교하면 12.7% 저렴하다. 중도매인 판매가격도 배추 10㎏ 기준 1만7551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5.2%, 평년보다 23.8% 낮았다.

공급도 늘어날 전망이다. 출하가 늦어진 여름배추에 가을배추 물량이 더해지면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이달 배추 출하량이 전년보다 2.1%, 평년보다 5.5%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가을배추 예상 생산량은 122만2000t이다. 지난해보다 19.3%, 평년보다 3.2% 많은 규모다.

배추 가격 부담은 줄었지만 김장을 둘러싼 소비 습관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 농경연의 ‘2025년 소비자 김장 의향 및 주요 채소류 공급 전망’에 따르면 4인 가구 기준 김장용 배추 구매량은 2020년 21.9포기에서 지난해 18.3포기로 16.4% 감소했다. 5년 사이 가구당 김장 규모가 배추 세 포기 이상 줄어든 셈이다.

김치를 직접 담근다는 가구 비율도 지난해 62.3%로 전년보다 2.2%포인트 낮아졌다. 반면 상품김치를 구매한다는 비율은 29.5%에서 32.5%로 높아졌다. 구매 이유로는 ‘필요한 만큼만 살 수 있어서’가 39.5%로 가장 많았다. ‘김치 담그기가 번거로워서’라는 응답도 33.1%에 달했다. 재료를 싸게 사는 것만큼 담그는 수고와 보관 부담을 줄이는 일이 중요해진 것이다.

소용량·고급 김치로 옮겨가는 소비

김치 소비의 변화는 유통업체 매출에서도 나타난다. 롯데마트의 올해 1~9월 포장김치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약 5% 증가했다. 이마트에선 같은 기간 1㎏ 이하 소용량 포장김치 매출이 6.6% 늘었다.

컬리에선 작은 포장일수록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올해 7~9월 전체 포장김치 거래액이 전년 동기보다 35% 늘어난 가운데 100g~1㎏대 소용량 제품은 39% 증가했다. 중간 용량인 2~4㎏대 제품의 증가율은 26%, 대용량인 5~10㎏대는 18%였다. 김치를 대량으로 쟁여두기보다 조금씩 자주 구매하는 수요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유통업계는 소용량에 이어 고급화로 시장을 넓히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오는 13일 압구정본점 식품관에서 전통식품 브랜드 ‘명인명촌’의 김치 12종을 선보인다. 배추김치와 열무김치, 오이소박이 등 일상김치 10종과 순무김치, 갓김치 등 별미김치 2종이다. 배추김치는 1㎏에 3만원, 순무김치는 3만2000원이다. 배추와 무뿐 아니라 소금, 젓갈, 고춧가루까지 명인명촌이 발굴한 장인들의 식재료를 사용했다. 향후 무역센터점과 판교점 등으로 판매처를 확대할 계획이다.

호텔에선 김치가 독립적인 수익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조선호텔앤리조트의 지난해 김치 매출은 540억원으로 전체 매출 7772억원의 약 7%를 차지했다. 올해 1~9월에도 전년 동기보다 22.5% 늘었다. 회사는 지난 1월 경기 성남에 기존 시설보다 약 2.5배 큰 ‘조선호텔 프리미엄 김치센터’를 열었다. 올해 김치 매출 목표는 620억원이다.

2023년 김치 시장에 진출한 롯데호텔앤리조트도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김치 매출이 전년보다 42% 증가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약 15% 늘었다. 지난 6월에는 원하는 주기에 맞춰 김치를 배송받는 정기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겨울을 앞두고 한 번에 김장하던 수요를 연중 반복되는 구매로 연결하려는 시도다.

배춧값은 김장 비용을 좌우하지만, 김장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게 됐다. 필요한 양만 사고, 원하는 맛을 고르고, 담그는 시간을 아끼려는 소비가 김치 시장을 바꾸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직접 김치를 담그기보다 필요한 만큼 사 먹는 소비가 일반화되고 있다”며 “용량과 품질, 가격대를 세분화해 상품군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