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자 구진희 씨와 그의 가족 /사진=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기증자 구진희 씨와 그의 가족 /사진=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딸과 떠난 베트남 여행 중 뇌출혈로 쓰러진 50대 여성이 뇌사 장기기증으로 3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구진희(55) 씨는 지난달 18일 고신대학교복음병원에서 뇌사 장기기증으로 3명의 환자에게 간과 신장(양측)을 나누고 세상을 떠났다.

구 씨는 딸과 베트남을 여행하던 중 지난달 12일 갑자기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며 뇌출혈로 쓰러졌다. 현지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국내 병원으로 옮겨졌고,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 판정을 받았다.

구 씨는 생전 가족에게 장기기증 의사를 밝혀왔다. 남편 김기선 씨는 "평소 아내와 마지막 순간 장기기증을 하면 좋은 일 아니겠냐는 이야기를 나눴다. 딸들도 아내에게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고인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고 전했다.

김 씨는 2021년 자신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며 시신을 기증한 모습도 아내와 가족들에게 영향을 줬다고 덧붙였다.

생전 구 씨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자는 마음으로 25년간 투병하면서도 봉사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1994년 남편과 결혼해 슬하에 두 딸을 두었다. 그는 2001년 임신 중 특발성 혈소판 감소증을 진단받았고, 치료에도 잘 반응하지 않아 25년간 입원을 반복해야 했다.
기증자 구진희 씨 /사진=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기증자 구진희 씨 /사진=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몸이 아픈 와중에도 구 씨는 자신보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먼저 생각했다. 2015년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부산으로 이주한 뒤에는 남편 회사의 신앙 모임에서 활동하며 직원과 그 가족들이 어려울 때 곁에서 힘이 되어주려 했다. 어린 자녀들을 대신 돌봐주고, 새로 입사한 직원들이 회사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환우들을 문병해 위로하고, 캄보디아와 몽골 등으로 해외 봉사도 다녔다.

몸 상태가 안정될 때면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 구 씨의 큰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항공사 기장인 남편은 여행하는 동안 아픔을 잊고 즐거워하는 아내를 보며 함께 여행 다닐 기회를 자주 마련했다. 많게는 1년에 서너 차례씩 함께 떠났던 시간은 가족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이 됐다.

여행만큼이나 구 씨의 삶을 채운 것은 두 딸이었다. 구 씨는 지난 8월 큰딸 지수 씨가 낳은 첫 손주를 품에 안았다. 작은딸 지원 씨는 내년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남편 김 씨는 아내에게 "당신을 만난 지 33년,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들 잘 간직하겠다. 이제 아픔 없는 곳에서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어라. 사랑하고 정말 고마웠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큰딸 지수 씨는 "앞으로도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며 엄마의 가치관을 이어가겠다"고 했고, 작은딸 지원 씨는 "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 행복했다"며 애틋한 마음을 표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