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학교 떠나 아프리카로, 13년간 고아 돌봐…"마음의 평화 얻었다"
'韓 최초 유럽무대 데뷔' 메조소프라노 김청자 별세…향년 82세(종합)
한국인 최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섰던 메조소프라노 김청자(金淸子)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5일 오후 3시 40분께 용인 성루카병원에서 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고 제자와 유족이 6일 전했다.

향년 82세.
1944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춘천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동생 김석호씨는 "중학교 음악교사가 성악을 배우라고 권한데다 당시 아일랜드 출신 신부님이 '언제든 성당 피아노를 쳐도 좋다'고 해주신 게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서울 진명여고를 졸업한 뒤 1963년 외국 신부의 도움을 받아 독일로 건너갔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면서도 음악의 꿈을 놓지 않았고,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레오폴트 모차르트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공부한 뒤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졸업했다.

1970년 한국인 최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데뷔하고 스위스 베른오페라단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이후 독일 카를스루 국립오페라단원 생활을 비롯해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16년간 이름을 날리면서 뒤셀도르프 오페라단의 프리마돈나로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뉴욕,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등에서 독창회도 열었다.

1973∼1978년 중앙대와 연세대 음대 성악과 교수, 1994∼201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교수로 재직했다.

정년퇴임 후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고아들을 돌봤다.

퇴직 전인 2009년 말라위의 오지 카롱가에 들렀다가 고아 수천 명을 돌보는 '루스빌로(희망) 공동체'를 접하고는 "내가 찾던 곳이 여기구나 싶었다"고 회상했다.

2010년 2월 한예종을 퇴직한 뒤 같은 해 9월 전원주택을 판 돈 2억원을 들고 말라위로 떠나 2022년 10월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을 때까지 햇수로 13년간 카롱가 지역 고아들을 돌보며 살았다.

아이들에게 한국에서 가져간 키보드, 드럼 등 악기 연주와 성악, 음악이론을 가르치거나 함께 놀아주며 정서 함양을 도왔다.

공동체 사람들은 이런 그를 '뮤직 디렉터'라고 부르며 따로 강의실까지 마련해 줬다.

지역 추장은 고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여인'이라는 뜻의 '루세케로'란 이름을 지어줬다.

김씨는 "사랑을 얻기 위해 달려온 길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완전하고도 영원한 사랑을 만났다"고 말했다.

2011년 4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전에는 예술가로서 나 자신을 주장하고 살았지만, 말라위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서서히 나 자신을 지우는 영적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후원금을 모금해 우물을 42개 팠다.

동생 석호씨는 "누나는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성악가가 될 수 있었으니 이번에는 내가 남을 도울 차례'라고 생각했다.

말라위에서 고아들을 보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겠다고 느꼈다고 한다"며 "후원자들에게 '말라위에서 보내는 소식'이라는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그 편지를 모은 책이 최근에 출간됐다"고 말했다.

암 판정을 받은 뒤 귀국해 경기 남양주 자택에서 요양하다가 성루카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고인이 2014년 출간한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바오로딸출판사)에는 30년 음악 인생과 아프리카 봉사 활동 모습 등이 상세하게 담겼다.

유족으로는 독일에서 안드로메다 챔버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활동 중인 아들 다니엘 글라첼이 있다.

빈소는 6일 오전 11시부터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1호실에 마련되며, 8일 서울 개포동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치러진다.

☎ 02-2258-5940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