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미투자 계획 발표에 韓 기자 참석도 거절한 美
지난달 30일 백악관에서는 한국의 대미 투자 계획이 발표됐다. ‘결단의 책상’에 앉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뒤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더그 버검 내무장관,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이 섰다. 마이크 던리비 알래스카 주지사, 댄 설리번 상원의원(공화, 알래스카), 닉 베기치 하원의원(공화, 알래스카) 등 알래스카 관계자들이 그 사이사이를 채웠다.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시행사인 글렌파른의 브렌던 듀발 최고경영자(CEO) 등 기업인도 여럿이었다.

한국인은 한 명도 없었다. 한국 정부는 이날 백악관의 발표를 유튜브로 시청해야 했다. 한국 자금이 2000억달러(약 270조원) 투자되는 상황에서 이례적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5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방미하는 과정에서 2차 대미 투자 내용을 함께 발표했다.

기자는 백악관 기자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질문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이뤄지는 문답에 참여하려면 백악관 풀 기자단으로 선정돼야 한다. 외신기자가 풀에 들어가는 일은 드물지만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백악관 공보실에 문의했을 때 돌아온 답변은 “미안한데 자리가 없다”였다. “여건이 되면 불러 달라”고 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행사는 그대로 진행됐다. 러트닉 장관은 한국이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500억달러를 조금 넘는 금액”을 투자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기사를 보내고 잠깐 기자실을 나왔을 때 집무실 앞에서 행사 참가자 일행과 마주쳤다. 짧은 순간이지만 러트닉 장관과 던리비 주지사에게 알래스카 프로젝트와 관련해 한국 정부와의 입장차를 물어볼 수 있었다. 러트닉 장관은 명확하게 한국 정부 입장을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않은 채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괜찮다. 대단할 것이다. 지켜보자”고 답하고 자리를 떴다.

이후 상황은 알려진 대로다. 트럼프 대통령은 SNS에서 직접 ‘500억달러’를 못 박았고, 이틀 후 취재진이 관련 질문을 던지자 한국이 돈을 안 내겠다고 하면 “두 배로 청구하겠다고 전하라”고 고압적인 태도를 취했다.

동맹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마뜩지 않은 것은 한·미관계가 심각한 불신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대미 투자 발표 전날 주미대한민국대사관이 성대하게 주최한 국경일 행사에 미국 정부 핵심 인사들은 오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한·미관계에 문제가 없다고 거듭 강조하지만 워싱턴에선 대미 투자를 둘러싼 양국 간 긴장감과 불편한 분위기를 쉽게 느낄 수 있다. 한국이 대미 투자 시기를 일부러 늦추고 있다는 트럼프 정부의 인식이 ‘한국인은 한 명도 없는’ 일방적 투자 발표에 이른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