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 포스터.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암살자들 포스터.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유통·외식업계로 번지고 있다. 상영 중단 요구 속에서도 영화는 개봉 11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올해 흥행작 ‘왕과 사는 남자’보다 하루 빠른 기록이다. 반면 메가박스는 영화 굿즈의 남은 물량을 폐기하기로 했고, 주연 배우 유해진을 광고 모델로 쓴 버거킹에는 계약 해지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영화를 보지 말자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관객이 몰리고, 광고주들은 불매 요구를 받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영화 '암살자(들)', '왕사남' 보다 빨리 200만 관객 돌파

5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암살자(들)’은 전날 오후 9시 기준 누적 관객 204만여 명, 누적 매출액 약 200억4800만원을 기록했다. 역사 왜곡 논란과 상영 중단 요구 속에서도 초반 흥행세를 이어간 셈이다.
개혁신당 이기인 비상대책위원장 페이스북 캡처
개혁신당 이기인 비상대책위원장 페이스북 캡처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배후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있었을 가능성을 암시하느냐다. 1974년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문세광이 박 대통령을 저격하려다 육 여사가 숨졌다는 당시 수사 결과와 달리, 영화는 현장의 총성 가운데 출처가 불분명한 총탄을 형사와 기자들이 추적하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다른 저격범과 중앙정보부의 개입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과 국민의힘은 이를 박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아내의 죽음을 이용한 것처럼 그린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하며 상영 중단을 요구했다. 제작진은 박 대통령을 배후로 단정한 영화가 아니라 사건의 의문을 극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라고 반박했다.
메가박스 '암살자(들)' 굿즈 관련 입장문. 메가박스 인스타그램 캡처
메가박스 '암살자(들)' 굿즈 관련 입장문. 메가박스 인스타그램 캡처

메가박스·출연 배우 등 역사 논란 휘말려


최근 메가박스가 직면한 문제는 자체 판촉물이다. 영화 관람객에게 증정한 ‘오리지널 티켓’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 당시 기념식장을 담은 종이 위에 투명판을 겹치면 탄흔이 나타나도록 제작됐다. 실존 인물의 사망 사건을 수집용 굿즈로 표현하는 게 적절하냐는 비판이 일자 메가박스는 지난 4일 남은 물량을 전량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영화 선택에 영향을 주는 관람평도 논란에 휩싸였다. 네이버는 ‘암살자(들)’ 관람평에서 기계적 어뷰징을 확인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해당 영화의 관람평 기본 정렬을 ‘공감순’에서 ‘최신순’으로 임시 변경하고, 영화 검색 첫 화면에는 당분간 전문가 평점만 표시하기로 했다. 이용자 평점과 관람평은 별도 관람평 페이지에서 계속 볼 수 있다.

출연 배우를 광고 모델로 쓴 기업에도 항의가 이어졌다. 유해진이 등장한 버거킹 광고에는 모델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댓글이 달렸고, 광고 영상의 댓글 기능이 제한됐다. 이민호가 모델로 활동하는 BBQ 제품을 불매하자는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

보수단체는 4일 유해진의 자택 앞에서 경찰 비공식 추산 50여 명이 참석한 집회를 열고, 버거킹과 키움증권 등에도 계약 철회를 요구하겠다고 예고했다. 키움증권은 최근 유해진 출연 광고 캠페인을 종료했지만, 영화 논란과 관계없이 예정된 일정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영화 암살자(들)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공개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뉴시스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영화 암살자(들)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공개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뉴시스

이번 논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52년간 공개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편지를 꺼내면서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 피격 이틀 뒤 딸에게 쓴 편지를 공개했다. 편지에는 자신이 맞을 총탄을 아내가 대신 맞았다며 비통해하는 내용이 담겼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4일 메가박스의 ‘탄흔 티켓’을 실존 인물의 죽음을 굿즈로 삼은 “몰지각한 상업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배우 개인에 대한 공격과 영화 관련 행사 취소를 문제 삼으며 정치권의 공세를 비판했다.
지난 4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영화 '암살자(들)'의 주연 배우 유해진 자택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제작사와 배우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영화 '암살자(들)'의 주연 배우 유해진 자택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제작사와 배우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소비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크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지난 5월 ‘탱크데이’ 판촉 문구 논란 직후 주간 카드 추정 결제액이 321억6000만원에서 236억9000만원으로 26.3% 감소했다. 6월 첫째 주에는 242억1000만원으로 전주보다 12.8% 반등했으나 논란 이전 수준에는 못 미쳤다. 다만 스타벅스는 기업이 직접 사용한 판촉 문구가 문제였다는 점에서, 광고 모델의 영화 출연을 이유로 항의받는 버거킹과 차이가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영화 논란 자체보다 논란이 자사 브랜드로 번지는 과정을 살펴야 한다고 진단한다. 메가박스는 굿즈가 새로운 논란을 만들자 배포를 중단했다. 반면 버거킹은 광고 모델을 향한 비판이 브랜드 불매 요구로 옮겨온 상황이다.

한 광고업계 관계자는 “역사 문제처럼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에서는 광고를 내리는 결정도 기업의 입장 표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실제 소비자 반응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