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물 새는 '재정 저수지' 미래대응기금
코로나19 사태 직후 몇 년간 한국 세수는 극심하게 출렁였다. 2021~2022년 국세는 본예산 전망보다 각각 61조원, 53조원 더 걷혔지만 2023~2024년에는 각각 56조원, 31조원 덜 걷혔다. 반도체 호황과 아파트·주식 등 자산시장 과열로 법인세와 양도소득세가 급증했다가 업황이 꺾이자 세수가 한꺼번에 무너진 결과다. 특정 업종과 자산시장에 민감한 세입 구조에서 이런 급등락은 필연에 가깝다.

조금 길게 보면 세수는 결국 제자리를 찾았다. 2020년 286조원이던 국세수입은 2025년 374조원으로 연평균 5.5% 늘었다. 같은 기간 명목성장률과 비슷했다. 2021~2022년 초과세수를 쌓아뒀다가 2023~2024년 세수 펑크 때 활용했다면 재정을 지탱하면서도 ‘지출 평탄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문재인·윤석열 정부는 잇단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초과세수를 대부분 소진했고 세수 풍년이 끝나자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예산 집행을 미루고 외국환평형기금까지 끌어다 세수 구멍을 메웠으며 지방에 내려보낼 교부세·교부금도 줄였다. 그 결과 경기가 식을 때 재정이 버팀목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여러 나라가 일찍부터 ‘구조적 재정수지’ 개념을 발전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 변동과 일회성 요인을 걷어내고 경제가 잠재 수준에서 움직일 때의 재정흑자·적자를 따지는 것이다. 칠레는 2001년부터 잠재 국내총생산(GDP)과 장기 구리 가격으로 계산한 ‘구조적 세입’에 맞춰 지출했다. 유럽연합(EU)도 회원국 재정을 구조적 재정수지로 점검한다. 스위스와 독일은 이 원리를 헌법에 담아 지출·차입 한도를 정했다. 호황 때 돈을 영구 수입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올해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다시 찾아오자 정부는 미래대응기금을 고안했다. 구조적 재정수지와 닮은 발상이란 점에선 긍정적이다. 최근 10년 내국세 추세선을 웃도는 내년 ‘추가세수’ 162조원이 재원이다. 이를 ‘재정 저수지’에 모아 미래에 투자하겠다는 구상이다. 올해 초과세수까지 더하면 기금은 200조원 안팎으로 불어난다.

하지만 뜯어보면 허점이 적지 않다. 느슨한 국회 통제 등 다른 문제도 많은 비판을 받지만 가장 큰 결함은 끊기 어려운 계속적·반복적 지출까지 일시적 세수에 기대도록 설계한 점이다.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내년 기금 사업비 45조4000억원 중 52%인 23조6000억원이 기존 사업을 옮겨온 것이다. 아동수당, 청년미래적금, 농어촌기본소득처럼 받는 사람이 생기는 순간 권리가 되는 사업이 대표적이다. 청년에게 13조3000억원, 성장동력에 14조2000억원을 투자한다는 홍보와 달리 신규 사업은 각각 4조5000억원, 4조9000억원뿐이다. 기금 수입은 출렁이는데 지출은 상당 부분 굳어 있어 세수가 꺾이면 부담은 결국 일반회계로 넘어간다.

그나마 2021~2022년 추경은 대부분 일회성 지원금이라 호황이 끝나자 멈출 수 있었다. 이번엔 다르다. 겉보기엔 구조적 재정수지 같은 저수지를 만들고는 바닥에 수로를 뚫어놓은 셈이다.

정부 세수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란 지적도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국세가 연평균 13.4% 늘 것으로 본다. 2022년 세수 호황 때도 2025년 국세를 439조원으로 내다봤지만 실제는 374조원에 그쳤다.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이런 일이 재연되지 말란 법은 없다. 반도체 가격이 급락해 명목성장률까지 꺾이면 2030년 국가채무비율을 49%로 묶겠다는 정부 계획도 장담하기 어렵다.

향후 국회 예산 심의와 정부의 사업 발굴에선 ‘일시적 세수는 일시적 지출에’라는 원칙부터 재확립해야 한다. 기존 사업을 옮겨 담기보다 산업 전환기 전직·재교육, 노동·의료·교육 개혁에 드는 일시적 비용처럼 구조개혁을 뒷받침하는 사업과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투자 중심으로 기금을 재편해야 한다. 그래야 세수가 꺾여도 지출을 줄이고 미래 세입을 늘릴 수 있다.

차제에 한국도 현행 관리·통합재정수지와 함께 경기·반도체 가격 변동을 걷어낸 구조적 재정수지를 개발해 공표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일시적 세수를 가려낼 잣대가 있어야 제대로 된 재정 저수지를 마련하고 무분별한 지출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