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왕'이라더니…무조건 사과하던 일본이 달라졌다 [도쿄나우]
“이제 손님은 왕 시대 끝나나.”

일본에서 이른바 ‘고객 갑질’로 불리는 커스터머 하라스먼트(카스하라) 대책이 1일부터 의무화됐다. 금융·외식·의료 등 고객 응대가 많은 업종을 중심으로 피해가 확산하자 일본 정부가 기업에 대응 지침과 상담체계 마련을 요구한 것이다. 기업들도 과도한 요구를 거부하거나 고객과의 교섭을 중단하는 기준을 명문화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1일 후생노동성은 지난해 6월 성립한 개정 노동시책종합추진법을 이날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기업은 카스하라 대응 방침을 마련하고 피해 직원이 상담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후생노동성은 카스하라의 대표 사례로 고객·거래처·시설 이용자 등에 의한 부당한 요구, 폭행, 협박, 반복적이고 집요한 언행 등을 제시했다. 그동안 일본 기업에는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을 방지할 의무가 있었지만, 이번 법 시행으로 외부 고객이나 거래처로부터 직원을 보호하는 조치까지 의무 범위가 넓어졌다.

피해는 서비스업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도쿄도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는 카스하라 피해를 직접 입었거나 관련 사례를 보거나 들었다고 답한 직원이 40%를 넘었다. 업종별로는 금융·보험업이 61.3%로 가장 높았고 외식·숙박업 58.9%, 의료·복지업 58.6%가 뒤를 이었다.

금융권은 과도한 요구에 대한 ‘거절 기준’을 구체화하고 있다. 미즈호은행은 카스하라를 ‘부적절한 요구 내용’과 ‘부적절한 요구 방식·태도’로 나눠 관리한다. 상품이나 서비스와 무관한 요구에 대해서는 응하지 않을 수 있고, 부당한 요구가 계속될 경우 고객과의 교섭 자체를 중단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비대면 거래가 많은 인터넷은행도 대응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익명성이 높은 온라인 환경에서 고객이 불만이나 스트레스를 과격하게 표출하기 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GMO아오조라넷은행은 과도한 요구 등 ‘중대한 민원’이 발생할 경우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절차를 마련했다.

보험업계에서는 인공지능(AI)도 활용하고 있다. 도쿄해상일동화재보험은 지난달부터 AI를 이용해 카스하라 상황에 대한 대응을 연습할 수 있는 도구를 고객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에 제공하고 있다. 피해를 입은 직원이 회사를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의료 현장도 주요 대응 대상이다. 민간 조사에 따르면 일본 의사의 약 60%가 카스하라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후생노동성은 2026회계연도 말까지 의료기관용 카스하라 대응 매뉴얼과 홍보 포스터를 만들어 병원과 진료소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환자와 가족의 언행 등 의료업계 특유의 사례뿐 아니라 피해 직원의 사후 돌봄 방안도 담을 계획이다.

외식업계에서는 ‘무조건 사과하지 말라’는 지침까지 등장했다. 농림수산성이 마련한 외식업계용 가이드라인은 음식 제공 지연 등 점포 측 과실이 있을 경우 신속하게 사과하되, 점포에 잘못이 없는 경우에는 불필요한 사과를 하지 말도록 했다. 카스하라로 판단되면 고객에게 퇴점을 요구하고, 방범카메라 녹화나 녹음으로 피해 기록을 남기는 방안도 권고했다.

편의점업계도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패밀리마트는 지난달 전국 약 1만6000개 가맹점에 게시하는 카스하라 방지 포스터를 새로 제작했다. 직원의 동의 없이 촬영하는 행위도 카스하라에 해당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실제 점원을 몰래 촬영한 뒤 SNS에 올리는 사례가 잇따른 데 따른 조치다.

다만 현장에서는 정당한 민원과 카스하라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같은 고성이나 항의라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소매업계 관계자는 “동일한 행위라도 카스하라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며 “필요하면 본사에 보고하거나 사안에 따라 경찰에 대응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이번 제도 시행을 계기로 ‘손님은 왕’이라는 전통적인 서비스 관행이 바뀔지 주목된다. 고객 만족을 최우선시하던 일본 기업들이 종업원의 안전과 근무환경을 이유로 부당한 요구에 보다 적극적으로 선을 긋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