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수용소에서 첼로를 빼앗긴 청년은 망명 뒤 세계 무대로 돌아왔다. 당대 최고의 첼리스트인 로스트로포비치와 피아티고르스키 모두를 사사한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그의 음악은 역사적 질곡에서 벗어나 거장들과 함께하고, 가족의 온기로 담아낸 인생의 결실이었다. 서유럽과 러시아의 음악 세계를 융합하며 수많은 첼리스트의 귀감이 된 마이스키의 삶을 되짚는다.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 ⓒ arte, Photo by 구본숙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 ⓒ arte, Photo by 구본숙
비틀스가 해체된 1970년은 소련의 예술사에서도 빠질 수 없는 해다. 소련은 레닌 탄생 100주년을 대규모로 축하했다. 인간 해방의 상징이던 베토벤의 탄생 200주년을 기리고자 기념위원회를 꾸렸고, 크렘린에서 축하 음악회도 열었다. 그 이면엔 브레즈네프 정권의 예술 탄압이 있었다. 수용소의 삶을 폭로한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쓴 작가 솔제니친은 같은 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귀국길이 막힐까 봐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미 소련작가동맹에서 제명된 상태라 출국 자체가 위험한 도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