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방위산업의 ‘카르텔’을 깰 채비를 하고 있다. 그동안 보안과 품질이 중요한 산업 특성을 고려해 독과점 구조를 용인했는데, 더 이상 방산시장에만 예외를 적용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80여 개 방산 지정 업체가 사실상 독점하던 구조가 깨지면 국내 방산시장에 경쟁과 혁신이 되살아날 것이란 기대도 있지만 방산업체 실적 악화로 품질과 안정성에 문제가 생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소수 업체가 방산시장 독과점…'50년 카르텔' 깬다

◇‘고인물’ 된 방산시장

2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공정위는 방산시장 독과점 구조 개선을 위해 올초부터 방위사업청, 산업통상부 등과 협의하고 있다.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국가 안보라는 특수성 때문에 구조적으로 경쟁이 제한돼 있던 방산 분야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정위는 구체적으로 방산물자 지정 재검토 절차를 강화하고, 신규 기업 진입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공정위 지적대로 국내 방산시장은 폐쇄적인 것이 사실이다. 1973년 방산물자·업체 지정제도를 도입한 뒤 한국에선 정부가 지정한 업체만 정부가 지정한 방산물자를 생산할 수 있다. 지난달 말 기준 정부 지정 방산업체는 84곳이다. 신규 지정 업체와 지정 취소 업체는 매년 한두 곳에 그쳐 전체 방산업체는 5년 전(85곳)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전체 방산업체 중 절반은 2000년대 이전에 지정돼 20년 넘게 독과점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방산물자는 매년 늘고 있다. 지난 7월 기준 방산물자는 1732개로 2020년(1503개)과 비교해 15.2% 증가했다. 방사청이 3년마다 방산물자 지정 취소 여부를 검토하지만 지정이 취소되는 물자보다 신규 지정되는 물자가 더 많기 때문이다. 방산물자가 늘며 지정 방산업체가 거둔 매출은 2020년 15조3517억원에서 2024년 26조7748억원으로 74.4% 불어났다.

◇공급망 불안까지 초래

이런 폐쇄적인 구조는 경쟁 제한뿐 아니라 공급망 불안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선 방산물자 10개 중 8개는 특정 업체만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대안이 없다 보니 문제를 일으킨 업체도 시장에서 퇴출당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일도 벌어진다.

잠수함 부품을 제조하는 중소업체 T사는 올초 영업비밀을 불법 취득·보유한 혐의로 핵심 관계자들이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여전히 주요 방산 대기업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한 방산 대기업 관계자는 “가장 치명적인 영업비밀 문제를 일으킨 업체지만 당장 대체 업체를 찾을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납품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지정된 방산업체에 방산물자 생산을 맡기는 구조를 독과점으로 규정하는 건 방산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방사청은 매년 군에서 사용할 방산물자의 생산계획물량을 방산업체에 통보하고, 업체는 이를 생산해 납품해야 한다. 군에서만 사용하는 방산물자는 시장성이 떨어지는 만큼 정부는 방산업체에 일정 수준의 이익을 더해 생산원가를 보장해준다. 수요와 공급이 정해진 방산물자시장은 애초에 경쟁이 성립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설명이다.

경쟁 체제로 전환해 같은 방산물자를 생산하는 업체가 늘어나면 업체의 실적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독점 기술을 보유했거나 민간 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업체는 방산업체 지정을 원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 최근 ‘K방산’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아 한국군에 납품하지 않아도 수요처가 많은데, 방산업체로 지정되면 추가 규제를 받아야 해서다. 잠수함용 수소연료전지 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범한퓨얼셀은 방산업체 신청을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종관/조철오/김다빈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