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자율주행의 '진짜 승부처'…동남아서 통하면 세계에 통한다 [이성득의 아세안 돋보기]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짧은 거리도 몇 시간씩 걸리는 탓에 자율주행 수요는 어느 곳보다 크지만, 정작 동남아 대도시 도로는 자율주행에 가장 어려운 도로다. 과연 동남아에서 자율주행차는 요원한 것일까?
실험은 이미 시작됐다. 다만 출발점은 동남아에서 가장 질서정연한 도로를 가진 싱가포르다. 올해 4월 풍골에서 일반 승객을 태운 자율주행 셔틀 운행이 시작됐고, 7월 중순까지 이용자는 1만1500명을 넘었다. 그랩은 중국 위라이드(WeRide)와, 컴포트델그로(ComfortDelGro)는 중국 포니AI와 손잡았다. 지난달 18일에는 미국 웨이모도 새 자율주행 사업자로 선정됐다. 내년 준비 주행을 시작해 2028년 상업 운행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다른 나라들도 바삐 움직인다. 태국은 지난달 라용에서 처음으로 레벨4 자율주행 차량을 시험했다. 베트남 빈패스트는 엔비디아, 오토브레인스(Autobrains)와 손잡고 동남아용 레벨4 로보택시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이 실험들의 공통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싱가포르 셔틀에는 여전히 안전 요원이 탑승하고 태국의 시험은 폐쇄된 시험장에서 이뤄졌다. 실험이 쉬운 곳에서 시작된 셈이다. 싱가포르를 벗어나는 순간 난도는 크게 높아진다.
동남아 대도시에서는 오토바이와 삼륜차, 버스, 노점상과 보행자가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운전자끼리 눈을 맞추고 조금씩 양보하며 만들어 내는 암묵적인 질서가 교통의 흐름을 결정하기도 한다. 잘 정돈된 도로에서 학습한 알고리즘에는 만만치 않은 환경이다.
인도네시아 사례는 그 간극을 보여 준다. 2024년 신(新)수도 누산타라에서 중국중차(CRRC)의 무궤도 자율주행 트램(ART)을 시험했지만, 비상시 운전자가 개입해야 했고 장애물 앞에서 스스로 멈추는 기능도 입증하지 못했다. 결국 차량은 중국으로 돌아갔다. 혼잡한 자카르타가 아니라 교통량이 많지 않은 신도시에서 벌어진 일이다.
자율주행의 경쟁력은 잘 정돈된 도로에서 얼마나 매끄럽게 달리느냐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얼마나 안전하게 대응하느냐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끼어드는 오토바이와 보행자, 흐릿한 차선과 폭우에도 대응한다면 다른 복잡한 도시에서도 통할 가능성이 높다. 동남아는 거대한 잠재 시장이면서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자율주행 실험실이다.
이 경쟁은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현대차는 인도네시아 찌까랑에 완성차 공장을, 싱가포르에 글로벌혁신센터를 두고 있다. 2018년에는 그랩에 투자했지, 정작 그랩이 싱가포르 자율주행 셔틀에서 손잡은 상대는 중국 위라이드였다. 현지 공장과 지분 투자만으로는 자율주행 시대의 자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미래 자동차의 승부는 완성차 판매에서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지도, 통신을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넓어지고 있다.
자율주행의 미래를 확인하기 위해 실리콘밸리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잘 닦인 도로에서의 성공은 출발점일 뿐이다. 운전자 없는 자동차가 오토바이 행렬과 열대성 폭우를 뚫고 자카르타의 출퇴근길을 달리는 날이 온다면, 자율주행차는 가장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셈이 되지 않겠는가.
<한경닷컴 The Lifeist> 이성득 인도네시아 UNAS경영대학원 초빙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