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1차 유엔총회에 맞춰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1차 유엔총회에 맞춰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일 정상회담에서 엔화 약세에 대한 우려를 직접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본은행의 10월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부상하고 있다.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엔저가 미국의 무역수지와 장기금리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일본에 환율 안정을 요구하는 ‘외압’이 강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25일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23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엔화 약세 때문에 미국의 무역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밝혔다.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도 트럼프 대통령이 엔저 문제에 우려를 표했다고 말했다. 환율 문제는 통상 재무장관급에서 논의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정상회담에서 직접 언급됐다는 사실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배경에는 오는 11월 3일 미국 중간선거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엔저는 일본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 축소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엔화와 일본 국채 매도세가 미국 국채 매도로 이어질 경우 미국 장기금리를 끌어올려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금융·재정정책 자체를 논의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엔저가 다시 가속할 경우 다음달 29~30일 열리는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9월에 이어 2회 연속 금리 인상을 요구하는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당국은 이미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엔저 진정을 위해 움직였다. 일본은행은 지난 18일 정책금리를 1.0%에서 1.25%로 0.25%포인트 올렸다. 그러나 정책위원 9명 가운데 2명이 반대표를 던지면서 시장에서는 이를 ‘비둘기파적 금리 인상’으로 해석했고 오히려 엔화 매도가 확대됐다.

일본은행 회의를 앞두고 해외 투기세력이 엔화 매수 포지션을 크게 늘렸던 점도 변동성을 키울 요인으로 지목됐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15일 기준 투기세력의 엔화 순매수 규모는 1주일 전의 10배 이상으로 늘었다. 일본은행이 0.5%포인트의 대폭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엔화 매수를 자극했지만, 실제 인상폭이 0.25%포인트에 그치면서 포지션이 급격히 되돌려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에 일본 당국은 시장 참가자에게 거래 환율을 문의하는 ‘레이트 체크’를 실시하며 엔저를 견제했다. 이후 엔화 가치는 1엔 이상 급등해 한때 달러당 156엔대 후반까지 올랐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일본이 사용할 수 있는 남은 카드는 재무성의 외환시장 개입과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이다. 가타야마 재무상도 과도한 엔저가 이어질 경우 시장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일본은행 역시 엔저가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인다는 점을 주시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시장에서도 10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금리스와프 시장을 토대로 도탄리서치가 산출한 10월까지의 금리 인상 기대치는 0.31회로 높아졌다. 이는 시장이 다음달 일본은행의 0.25%포인트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30% 이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가까운 금융정보 컨설턴트 사이토 진 씨는 “기본 시나리오는 12월 금리 인상이지만 엔저가 진행되면 10월 인상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재무성이 외환시장 개입에 나서면 10월 인상이 기본 시나리오가 되고, 미·일 공조 개입이 이뤄진다면 사실상 확정적”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은행 내부 요인도 연속 인상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마에다 에이지 전 일본은행 이사는 “엔저가 더 진행되고 경제지표와 일본은행 지점장회의 보고 등을 통해 물가 상승 압력까지 확인된다면 10월 금리 인상 가능성은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도 9월에 이어 연속으로 금리를 올리는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향후 엔화 가치가 다시 급락할 경우 미국의 압박과 일본 내 물가 우려가 동시에 커지면서 10월 금융정책결정회의가 엔화 향방을 좌우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