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일본 아이치현 도코나메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아시안게임 e스포츠 그란투리스모7 결승 경기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3일 일본 아이치현 도코나메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아시안게임 e스포츠 그란투리스모7 결승 경기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계적인 게임 기업을 다수 보유한 일본이 정작 e스포츠 경쟁력에서는 한국과 중국에 크게 뒤처지자 국가대표 훈련시설에 전용 랩까지 마련하며 추격에 나섰다. 자국에서 열리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e스포츠를 본격적인 스포츠 종목으로 육성하고 선수 지원 체계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일본스포츠진흥센터는 지난 7월 말 도쿄 기타구 아지노모토 내셔널 트레이닝센터(NTC)에 ‘e스포츠 랩’을 개설했다. 올림픽·패럴림픽 선수들이 훈련하는 국가대표 거점 내 약 180㎡ 규모의 창고를 약 8000만엔을 들여 개조했다. 게임용 PC 16대와 휴식 및 교류 공간 등을 갖췄다.

선수들은 대회 전 이곳에서 훈련하고 기존 올림픽 종목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영양과 수면 등에 관한 지원도 받는다. 시선 추적 장치와 열화상 카메라 등을 이용해 경기 중 선수의 시선이나 체온 변화, 긴장 상태를 분석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은 닌텐도와 소니, 세가, 캡콤, 반다이남코 등 세계적인 게임 기업을 배출한 대표적인 게임 강국이다. e풋볼과 뿌요뿌요 등 아시안게임 e스포츠 종목에 채택된 게임 가운데 절반 이상도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e스포츠 시장과 국제 경기력에서는 한국과 중국에 뒤처져 있다. Statista도 일본이 세계 최대 게임시장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한국·중국과 비교하면 e스포츠 발전이 느렸다고 평가한다.

한국과의 차이는 선수 육성과 프로 생태계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한국은 2000년대 초부터 프로게이머와 프로팀, 방송리그, 전용 경기장 등이 자리 잡으며 e스포츠를 하나의 산업이자 관전 스포츠로 키웠다. 서울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기업이 총 535억원을 투자해 건립한 전용 e스포츠 경기장도 2016년 문을 열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게임은 놀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대회 상금에 대한 법적 제약과 콘솔·모바일 게임 중심의 시장 구조도 e스포츠 성장을 늦춘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국제 e스포츠의 중심인 PC게임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점도 한국과의 격차를 벌린 요인이다.

국제대회 성적에서도 격차가 드러났다.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과 중국은 여러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했지만 일본은 출전한 7개 전 종목에서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일본 스포츠계가 이번 자국 개최 아시안게임을 e스포츠 경쟁력 강화의 전환점으로 삼으려는 이유다.

일본의 e스포츠 산업 자체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5년 시장 규모는 약 280억엔으로 5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커졌지만 미국의 7분의 1 수준에 그친다. 게임 산업의 국제적 위상과 비교하면 e스포츠 분야의 존재감은 아직 상대적으로 작다는 평가다.

일본은 이번 e스포츠 랩을 단순한 게임 연습장에 그치지 않고 스포츠과학 연구 거점으로도 활용할 방침이다. 선수들의 긴장 상태와 체온, 시선 변화 등 데이터를 축적해 다른 종목 선수의 경기력 향상 연구에도 활용한다. 게임 시간과 경기력 사이의 상관관계 등에 대한 연구도 진행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최근 e스포츠의 올림픽 진입에 다소 신중한 태도로 돌아섰지만 일본은 자체적인 육성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스포츠협회는 이달 국민스포츠대회의 문화 프로그램으로 실시해온 e스포츠 대회를 정식 경기회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게임을 만들어 세계에 수출해온 일본이 이제는 그 게임을 누가 더 잘하느냐를 겨루는 e스포츠에서 한국과 중국을 추격하는 입장이 된 셈이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