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가 가격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가 가격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 30년 만기 국채금리가 2004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유가 상승, 미국 중앙은행(Fed)고위 관계자들의 연이은 매파적 발언, 기대 이상의 미국 경제지표, 부진한 국채 경매 등이 기본적인 원인으로 분석된다. 시장에선 단기물 급등에 대해선 장·단기 금리차가 좁혀지는 데 베팅했던 채권 트레이더들이 단기물 매수 포지션을 강제로 정리하고 있는 것, 장기물에 대해선 '30년 동안 돈을 묶으려면 훨씬 높은 보상이 필요하다'는 투자자 인식을 추가적인 요인으로 꼽고 있다

톰 바킨 리치먼드연은 총재 "인플레 유발요인 생각보다 오래간다"


24일(현지시간) 미 30년 만기 국채금리는 이날 오전 11시30분 기준 5.452%까지 올라 2004년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글로벌 벤치마크로 평가받는 10년 만기 국채금리도 같은 시각 5.16%까지 상승해 2007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단기물로 기준금리의 영향을 받는 2년 만기 국채 금리도 4.912%로 5%를 눈앞에 두고 있다. 채권 금리 상승은 가격 하락을 뜻한다.

최근 미국 국채 금리는 시장 예상을 웃돈 미국 경제 지표, Fed 주요 인사의 금리 인상 시사 발언, 국제유가 상승 등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톰 바킨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한 대담에서 "지난주 금리 인상은 최근 물가 상승 압력을 유발하는 요인들이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결론을 반영한 것"이라며 "휘발유 가격 상승세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캐나다에 대한 새로운 관세 부과 또한 간과해 왔던 무역 긴장으로 인한 가격 압박이 지속될 수 있다"며 "인공지능(AI) 투자로 인해 공급망이 압박받으면서 소비자 물가가 상승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장에선 Fed가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데 이어 추가 인상에 나설 것이란 기대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선물 시장은 Fed가 오는 10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가능성을 65%가량 반영하고 있다. 일주일 전 확률은 49%다

단기물 금리 하락에 베팅했던 트레이더 '멘붕'


단기물 상승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레이더의 포지션 강제 청산'을 꼽았다. MUFG은행은 이날 보고서에서 "이번 움직임은 투자자들이 높은 수준에서 어쩔 수 없이 매도하는 고통스러운 거래의 특징을 보이며, 추가 상승 여력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모히트 쿠마르 제프리스 수석 유럽 이코노미스트도 "주요 원인은 손절매와 포지션 청산일 가능성이 높다"며 "채권 시장에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크다"고 분석했다.

WSJ에 따르면 최근 몇 주 동안 많은 트레이더들이 단기 채권 금리와 장기 채권 금리의 차이가 확대될 것이라는 데 베팅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러나 Fed가 기준 금리를 올렸고 추가 인상 가능성이 커지면서 단기물 금리가 급격하게 올랐다. 이 결과 금리 격차는 좁혀졌다.
미 국채 장기물보다 빠르게 오른 2년물 금리 / 월스트리트저널 캡처
미 국채 장기물보다 빠르게 오른 2년물 금리 / 월스트리트저널 캡처
그 결과 예상과 반대로 장단기 금리차가 축소, 즉 수익률곡선이 평평해지는 '플래트닝'이 발생했다. 플래트닝과 반대인 '스티프닝' 포지션, 즉 단기물보다 장기물 금리가 더 많이 오르거나, 단기물 금리가 더 많이 내려서 '장단기 금리차가 확대될 것'에 베팅한 투자자들의 손실이 커진 것이다.

스티프닝 투자자들은 손실이 커지자 포지션을 정리하고 있다. 단기채 가격이 오를 것(금리 인하)으로 보고 아예 매수하고 있었는데, 이를 팔면 단기채 가격이 더 떨어지면서 단기물 금리는 더 올라간다. 손절매가 다른 투자자의 손절매를 부르면서 '금리 상승 → 손실 확대 → 추가 채권 매도 → 금리 추가 상승'의 연쇄작용이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쿠마르는 "적극적인 트레이더는 '스티프너 포지션'을 보유하거나 아예 2년물 매수 포지션을 취했다"며 "지난 2주 동안 일부 포지션은 청산되었지만, 어제 또다시 대규모 매도세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장기 채권 보유 때 요구하는 '프리미엄' 증가

미 30년 만기 국채 금리 급등엔 △향후 몇 년 동안 정부가 장기 채권 발행을 늘릴 것이란 관측 △빅테크의 고금리 장기채권 발행에 따른 요구 금리 상승 △인플레이션이 생각보다 오래 갈 수 있다는 전망 등이 겹쳐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투자자가 30년 동안 채권에 돈을 묶어두려면, 인플레이션 위험, 재정 위험, 국채 공급 증가 위험, 정책 불확실성 등에 대해 추가 보상을 필요로한다. 소위 말하는 '기간 프리미엄'이다.

블룸버그는 "30년간 돈을 묶으려면 훨씬 더 높은 보상이 필요하다고 투자자들이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자들은 금리 인상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시장에선 1년 뒤 금리가 현재보다 최소 1%포인트 이상 높을 가능성을 약 50%로 보고 있다.

뉴욕=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