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에 따른 각국의 재정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가 고공행진에 따른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한 보조금 지출이 늘어나는 가운데 국채 금리마저 오르고 있어서다.

22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각국은 연료 가격 상승에 대응하느라 분주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연료비 보조금을 도입한 국가가 최근 4개월 동안 16개국에서 38개국으로 늘어났다고 집계했다. 에너지 관련 세금을 낮춘 국가도 40개국에서 57개국으로 증가했다. 보조금과 감세 등 다양한 형태로 소비자를 지원하는 국가는 지난 4월 말 56개국에서 9월 초 94개국으로 늘었다.

유럽 주요국은 기존 지원을 연장하거나 추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프랑스는 이달 말 종료할 예정이던 장거리 운전자 연료비 지원을 연장했고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연료비 부담을 덜어줄 대책을 조만간 내놓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정부의 자금 조달 여건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채권시장 약세로 미국 정부의 차입 비용은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프랑스와 독일 등 다른 선진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물가 상승과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까지 겹쳐 세수를 확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에너지 비용 지원을 취약계층 등에 한정하고 시행 기간을 짧게 설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유럽연합(EU) 경제 담당 집행위원도 “회원국이 신중한 재정정책을 펼쳐 재정계획에 제시한 목표를 지켜야 한다”고 경고했다.

유럽은 가스 저장량까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부담이 더 크다. 통상 유럽 국가는 겨울에 사용하는 가스 중 약 3분의 1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여름철에 매입해 저장해둔다. 하지만 올해는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주요국 가스 저장률이 50%대로 떨어졌다. 가스 의존도가 높은 영국에서는 일반 가정의 에너지 요금이 10월 4% 오르고 내년 1월에는 최대 26% 추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석유 자원이 부족한 동남아시아의 부담도 크다. 연료 가격을 보조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태국은 유가가 오를수록 정부 지출이 늘어난다. 당장 태국은 재정 압박 때문에 3월부터 보조금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강한 정치적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최근 필리핀에서는 에너지 보조금 추가 지원을 요구하는 시위가 버스 기사 등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상황이 낫다. 일부 주정부가 한시적으로 에너지 관련 세금을 면제했지만 연방정부 차원의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정책 대응과 관련한 선택지가 남아 있는 셈이다.

한 경제 전문가는 “고유가 상황이 길어지자 각국 정부는 보조금과 감세로 물가와 가계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국채 금리 상승 국면에서 재정 건전성까지 지켜야 하는 난제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오세성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