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마린솔루션의 선박 엔진 최적화 기술이 적용될 3800CEU급 자동차운반선 NEPTUNE PHOS호. HD현대마린솔루션 제공
HD현대마린솔루션의 선박 엔진 최적화 기술이 적용될 3800CEU급 자동차운반선 NEPTUNE PHOS호. HD현대마린솔루션 제공
글로벌 선주가 운항 중인 초대형 선박의 엔진을 점검·수리하려면 과거엔 몇 달 전부터 수리가 가능한 항구와 날짜를 미리 예약해야 했다. 하지만 HD현대마린솔루션의 서비스를 받으면 그런 불편이 사라진다. 선박 엔진 유지·보수가 필요한 시점에 HD현대마린솔루션이 알아서 선주의 운항 항로 인근 거점 항구에서 점검 및 수리를 해주기 때문이다.

글로벌 1위 조선사인 HD현대의 선박 애프터서비스(AS) 전문 계열사인 HD현대마린솔루션은 세계 유일의 선박 생애주기 관리 통합서비스 제공사를 넘어 데이터센터용 발전 엔진 유지·보수업체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 HD현대중공업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발전 엔진 생산 등에 1조1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하면서 더 주목받고 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이 과거 그룹내 조선사업 지원 계열사라는 오명을 벗고 '세계적인 선박 AS 회사'이자 'AI 데이터센터 확산의 수혜자'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지난 5년간 사모펀드(PEF)와의 협업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HD현대마린솔루션, 올해 선박AS 매출만 1조 돌파...AI 데이터센터 수혜까지

22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HD현대마린솔루션의 올해 선박 유지·보수 사업부문인 선박 애프터마켓(AM) 사업부 매출은 2021년 3652억원 대비 3배 수준인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최대 PEF 운용사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처음 투자를 시작한 이후 5년 만의 성과다. KKR은 2021년 2월 HD현대마린솔루션의 프리 IPO(상장 전 지분투자) 투자유치에 6500억원 규모로 참여해 지분 38%를 보유한 2대 주주에 올랐다. AM사업부는 HD현대마린솔루션의 주력 매출처로 나머지 매출은 선박에 연료를 공급하는 벙커링 사업과 친환경 선박 개조 사업, 디지털 솔루션 사업 등이 차지하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HD현대마린솔루션의 올해 예상 매출은 2조3717억원으로 전체 매출도 올해 처음으로 2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업이익은 KKR이 처음 투자한 2021년 1130억원에서 지난해 3501억원으로 4년 만에 약 3배로 증가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의 AM사업부 매출은 2019년 2958억원에서 2020년 3552억원, 2021년 3652억원으로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다가 KKR이 HD현대마린솔루션의 2대주주로 등극한 2021년 이후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의 AM사업부 매출은 2022년 전년 대비 27.8%증가한 4670억원, 2023년 30% 늘어난 6072억원, 2024년 32% 증가한 8059억원, 2025년 16.0% 늘어난 9351억원으로 급증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KKR이 비록 2대주주였지만 경영에 상당부분 관여하며 혁신을 지원했다"며 "세계 유일무이한 선박AS회사로 탈바꿈하는 데 HD현대그룹 뿐만 아니라 KKR의 기여가 컸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HD현대그룹 관계자는 "KKR은 2021년 6월 지분 투자를 단행한 이후,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FI)의 역할을 넘어 전략적 투자자(SI)에 준하는 수준으로 회사의 성장과 가치 제고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다"며 "투자 이후 KKR의 박정호 대표는 기타비상무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했으며 대부분의 이사회에 직접 참석해 회사의 경영 현황과 주요 사업 현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KKR은 사업 성장 방향과 중장기 전략 수립 과정에서 다양한 글로벌 투자 및 산업 관점의 인사이트를 제공했다"며 "HD현대, KKR 및 HD현대마린솔루션 경영진이 참여하는 정기 주주협의체를 매월 운영해 신규 사업 추진, 글로벌 사업 확장, 조직 경쟁력 강화 등 핵심 전략 과제에 대한 협의를 지속적으로 수행했다"고 말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2016년 11월 HD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 엔진기계사업부, 전기전자사업부 등 선박 관련 유무상 서비스 담당 조직이 독립해 출범했다. 당시 선박 AS라는 것을 별도 사업으로 보지도 않았던 게 글로벌 조선업계의 시각이었다. 선박 수리 역시 영업마진이 극히 적은 사업으로 치부돼 별도의 비즈니스 모델로도 간주되지 않았던 시점이다. 선박의 수명은 30여 년이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HD현대중공업이 선박을 만들고 나면 1~2년의 의무 보증기간 동안 무상으로 수리해줬다. 하지만 이후 남은 선박의 수명인 28~29년간 이를 수익화하는 데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KKR은 HD현대중공업의 기술력과 선박 AS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2021년 이 회사에 전격 투자했다. HD현대의 브랜드와 선박 건조에만 활용하던 기술을 선박 AS 시장에 적극 활용해 선박 수명기한인 30년 내내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전략도 수립됐다. 당시 선주 고객들의 수요도 명확했다. 돈을 더 내도 좋으니 단순한 선박 수리를 넘어 선박이 공해상에서 고장나거나 멈추는 불상사가 없도록 사전에 관리해달라는 것이다. 수리에 걸리는 시간이 긴 점은 한계였다. 선주사마다 바쁜 물류 운항 스케줄이 있다 보니 별도로 수리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KKR이 HD현대마린솔루션과 함께 이러한 고객 수요를 감안해 세계 유일의 선박 생애주기 관리 통합서비스업체로 변신을 시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선박 AS 시장'에 드라이브...전세계 적시 공급, 3~5년 장기 계약 사업도 확대

먼저 HD현대마린솔루션과 KKR은 전 세계 물류창고 활성화에 뜻을 함께 했다. 고객이 수리하러 일부러 HD현대마린솔루션으로 오는 게 아니라, 고객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미국 휴스턴, 네덜란드 로테르담, 싱가포르, 두바이 등 전 세계 허브 항만이 있는 물류 창고에 핵심 부품과 기자재를 쌓아 놓고 적시 공급할 준비를 한 것이다. 선박 엔진의 수명을 장기화하고 고장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서비스도 강화했다. 선주의 항로와 부품 수명 등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해 고장을 미리 잡는 예지보전 서비스를 고도화한 것이다. 힘센엔진을 생산하는 HD현대는 선박 보조(중형)엔진 시장점유율 세계 1위다. 선박 유지·보수의 안정성을 높이고자 3~5년간 정비 및 부품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기 확정 계약(LTSA)도 대폭 확대했다. KKR이 경영에 직접 관여하기 시작한 2021년부터 2025년까지 HD현대마린솔루션의 AM사업부 매출과 전체 영업이익이 2~3배 늘어난 것도 이 영향이 컸다.

KKR은 HD현대마린솔루션의 조직 문화도 바꿨다. 직원들의 동기 부여를 위해 HD현대그룹 계열사 중 이례적으로 2022년 우리사주 조합원 전체 약 570명을 대상으로 주당 5만원에 행사할 수 있는 매수선택권을 부여했다. 보통 M&A를 할 때마다 전 직원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해 직원들의 이직을 막고 애사심을 고취해온 KKR만의 파격적인 성과 보상 문화를 HD현대그룹에 처음 접목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HD현대의 기업문화와 다른 계열사 간 형평성 등을 고려할 때 시행하기 어려운 파격적인 조치였다"고 말했다. 반응은 좋았다. IB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HD현대그룹 계열사 중 신입사원 취업 선호도 꼴찌에 가까운 회사에서 가장 가고 싶어하는 회사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KKR 방식 성과보상 적용했더니 '인기 계열사'로...대기업-PEF간 협업 성공 사례

HD현대마린솔루션에 따르면 2016년 설립 당시 직원 수는 192명에서 2025년 기준 해외법인을 포함해 900명으로 9년 만에 4.6배로 늘었다. 총자산은 1448억원에서 1조2723억원으로 8.7배로 불어났다. 매출 역시 설립 이듬해인 2017년 2382억원에서 지난해 1조9827억원으로 8.3배가 됐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2024년 5월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했고 KKR은 지난 7월 회수를 완료했다. KKR이 HD현대마린솔루션 투자금 회수로 벌어들인 수익은 배당을 포함해 2조2000억원으로 투자원금의 3배를 웃돈다.

IB업계에선 HD현대그룹과 KKR간 투자 협업에 대해 "대기업과 PEF간 논바이아웃(비경영권) 투자 거래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고 보고 있다. KKR 역시 내부적으로 HD현대의 브랜드와 기술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며 가장 성공적인 대기업과의 투자 협업으로 여기고 있다. KKR은 삼성SDS, 삼성화재 등 삼성그룹과도 최근 투자 협업을 확대했다. 1976년 설립된 KKR은 50년간 전 세계에서 835건, 280조원의 M&A 투자를 집행했다. 전 세계에서 전 산업에 걸쳐 가장 많은 M&A와 기업 밸류업(기업가치 상승) 사례를 보유한 PEF로 꼽힌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