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자화통. 국가유산청 제공
황자화통. 국가유산청 제공
국내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화약무기가 나주 금성산에서 나왔다. 길이 23.75㎝, 무게 1032g짜리 청동 화기 '황자화통(黃字火筒)'이다.

국가유산청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21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공개회를 열고 이 유물의 조사 성과를 발표했다. 연구소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화약무기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몸체에 새겨진 글자 28자에 만든 때와 무기 이름, 무게, 감독한 관리와 장인의 이름까지 적혀 있다. 출토지가 분명하고 제작 시기와 제작 주체까지 글자로 확인되는 고려 말~조선 초 화약무기가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물은 2023년 11월 육군 부대가 금성산 등산로 공사를 앞두고 지뢰 탐지기로 지뢰를 찾다가 발견됐다. 화통은 9부 능선 바위 아래 10㎝ 깊이에 있었다. 부대는 엿새 뒤 국가유산청에 매장유산 발견 신고를 했다.

금성산에는 고려·조선시대 산성이 있었고, 왜구를 막는 요충지였다. 발견 지점 인근에서는 조선시대 화약무기인 비격진천뢰가 나온 적도 있다. 연구소는 이후 3년 동안 컴퓨터단층촬영(CT)과 X선 촬영, 성분 분석을 하고 여덟 차례 전문가 자문회의를 거쳐 진위와 제작 시기를 검증했다.
금성산과 영산강 전경. 국가유산청 제공
금성산과 영산강 전경. 국가유산청 제공
글자는 손잡이 나무를 끼우는 부분(모병)에 6줄 27자, 총부리에 1자가 새겨져 있다. 판독문은 '정사십이월일 연 황자화통 중일근십사량 감조녹사안휴보 장인석(丁巳十二月日 鍊 黃字火筒 重一斤十四兩 監造錄事安休甫 匠人石)'. "정사년 12월에 황자화통을 만들었다. 무게는 1근 14냥이다. 감독자는 녹사 안휴보이고 장인은 석이다"라는 뜻이다. 총부리의 '팔(八)'은 제작 번호나 관리 번호로 추정된다.

관청 실무를 맡던 하급 관직인 녹사(錄事)는 고려 말과 조선 초에 무기 제조 관청인 군기감에 배치돼 무기 주조를 담당했다. 국가유산청은 "감조(監造)와 녹사라는 명문은 당시 국가가 무기의 감독과 제작을 체계적으로 관리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황자'는 천자문 순서(天地玄黃)로 물건을 분류하던 고려·조선의 방식에서 나온 이름이다.
 고려 말 ~ 조선 초 군인과 황자화통 추정 복원도(AI 이미지). 국가유산청 제공
고려 말 ~ 조선 초 군인과 황자화통 추정 복원도(AI 이미지). 국가유산청 제공
정사년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문헌 기록과 화약무기 발달사를 대조하면 1377년(고려 우왕 3년) 아니면 1437년(조선 세종 19년)이다. 1377년은 최무선의 건의로 화약무기 제조 관청인 화통도감이 세워져 나라가 처음 화약무기를 만들기 시작한 해다. 1437년은 세종이 화약무기를 한창 개량하던 때다.

어느 쪽이든 국내에서 발견된 화약무기 중 가장 이른 시기다. 지금 보물로 지정된 총통류 14건 16점은 모두 16세기 제작품이고, 가장 이른 천자총통(국립진주박물관)이 1555년 것이다.

화통(火筒)은 화약을 터뜨려 화살이나 탄알을 쏘는 통 모양 무기를 고려 말~조선 초에 부르던 이름이다. 세종 이후에는 총통(銃筒)이라는 말이 주로 쓰였다. 당시 주력 무기였던 활보다 사거리와 파괴력이 크게 앞섰다. 이 화통은 발사체가 나가는 총부리, 화약을 채우는 약통, 나무 자루를 끼우는 모병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자루를 끼워 한 사람이 들고 쏘는 소형 개인 화기로, 조선 전기 소형 총통인 삼총통·신제총통과 비슷한 방식으로 화살을 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황자화통 발사 추정도. 국가유산청 제공
황자화통 발사 추정도. 국가유산청 제공
성분을 분석해 보니 구리·주석·납으로 만든 청동 주조품이었다. 주석 함량을 10% 이내로 조절해 강도와 연성을 함께 확보했다. 화약 폭발력에 화통이 깨지지 않게 하는 기술로, 우리 전통 화약무기의 성분 조성과 일치한다. 제련 과정에서 남은 황·규소·은 등 불순물도 확인됐다. 연구소는 "한국 화기 발달사 연구의 기준점이 될 수 있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황자화통은 오는 23일부터 11월 22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발견 유물 속보전에서 볼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오는 12월 대한민국 국제지상군방위산업전에 이 유물을 출품하고, 제작 시기를 좁히기 위한 추가 연구와 보물 지정 절차를 추진할 계획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