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인근 선박 / 로이터
호르무즈 해협 인근 선박 / 로이터
이란 내부 강경파가 지난 7월 호르무즈 해협에서 상선을 공격하면서 미국과 어렵게 마련한 평화합의가 무너지고 양국이 다시 전쟁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고지도자가 수 개월 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상황에서 내부 갈등을 조정할 권위가 약해지자 대미 협상파보다 확전을 주장하는 세력이 주도권을 잡았다는 해석이다.

1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미국과 평화합의를 체결한 직후인 7월 초 이라크에서 사망한 최고지도자의 장례 일정에 참석하던 중 이란군이 호르무즈 해협의 상선 세 척을 공격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한 척에는 불이 났고 다른 선박들도 피해를 입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즉시 아흐마드 바히디 이슬람혁명수비대 최고사령관에게 공격 경위를 따졌지만 바히디 사령관은 자신도 이를 승인하지 않았고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역시 공격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 NYT는"이란 당국자들과 혁명수비대 관계자들을 인용해 "강경파 일부가 중앙 지도부 승인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끝내고 경제를 회복하려던 온건·실용파의 협상 노선을 좌절시킨 것으로 평가됐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곧바로 테헤란으로 복귀했지만 이튿날 미국이 이란을 공습하면서 양국은 다시 전쟁 상태로 돌아갔다.

내부 충돌은 국가안보회의 개편으로 이어졌다. 새 최고지도자는 혁명수비대 전 사령관이자 정치 경험이 풍부한 모센 레자이를 국가안보회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서로 대립하는 정치·군사 세력을 중재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노선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고 최근에는 확전을 주장해온 강경파가 더 강한 위치를 확보했다.

실제 지난 주 이란과 미국은 다시 공격을 주고받았다. 이란은 처음으로 미국 해군 함정을 반복적으로 겨냥했고 미국은 최소 8척의 이란 유조선을 파괴했다. 이란 정부와 보안당국의 조사에서는 7월 상선 공격 결정의 배후로 성직자 출신 정보책임자 '호세인 타엡'이 지목됐다. 타엡은 미국과의 평화합의에 처음부터 반대했으며 새 최고지도자에게 전쟁을 끝내고 합의에 응한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을 반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최근 연설에서 협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의 권리를 무시하고 적의 과도한 요구에 양보하는 협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타엡은 최근 바시지 민병대 책임자로 임명됐다. 그는 과거 20년 넘게 혁명수비대 정보기관을 이끌었지만 2022년 이스라엘의 내부 침투와 튀르키예에서의 작전 실패 등을 이유로 당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 의해 해임됐다. 그러나 알리 하메네이가 전쟁 초기에 사망한 뒤 다시 영향력을 회복했고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후계 최고지도자로 선출하는 과정에서도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직 이란 당국자이자 이란 전문가인 알리레자 남바르 하기기는 7월 상선 공격의 목적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체결한 양해각서를 파기하고 향후 협상 가능성까지 없애는 데 있었다고 평가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공격 주체를 추궁하자 현장 지휘관들이 중앙 지휘부 승인 없이 호르무즈 통제권을 침해한 선박을 공격할 수 있도록 한 기존 명령에 따라 행동했다는 설명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혁명수비대의 하탐 알안비야 사령부가 7월7일 공격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는 성명을 내지 않은 점도 내부 이견을 보여주는 정황으로 제시됐다. 이란 당국은 공격 직후 미국과 일부 역내 국가에도 중앙정부와 무관한 현장 세력이 독자적으로 행동했다는 설명을 전달했다. 아바스 아락치 외무장관은 미국과의 긴장을 낮추기 위해 중재국 오만으로 급파됐다.

반면 이란 국내에서는 강경파가 협상단과 평화합의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국영방송과 거리 집회에서도 전쟁 재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란 정부는 미국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헤즈볼라 공격을 막지 않았고 이란 동결자산을 돌려주지 않았으며 호르무즈 해협의 이란 통제구역을 피해 선박을 통과시켜 먼저 합의를 위반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내부 갈등이 커진 배경에는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장기 부재도 있다. 이란 체제에서는 최고지도자가 정치·군사 세력 간 분쟁을 최종 조정하지만 그는 지난 3월 취임한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육성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서면 성명과 메시지가 실제 본인의 것인지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됐고, 페제시키안 대통령도 이를 의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